강릉에서 강릉스럽게 살아가기
3년 가까이 강릉에 살며 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차근차근 일상을 꾸리며 강릉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파란 하늘, 바다, 바람, 솔 내음, 커피 향. 이름들만 들어도 여유로운 것들이 강릉에는 가득하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시간 들이 넉넉하다.
그동안 돈 버는 일, 집 사는 일이 1순위인 삶을 살아온 나에게 강릉살이는 선물과도 같다.
강릉은 나에게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의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게 해주었다. 드디어 내 삶에 알맞은 속도를 찾게 해주었다. 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불안하고, 불편했던 마음들은 차차 사라지고 천천히 덜 가도 되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 이제야 나는 나다움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비를 하며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더 중요시 여기며 살아왔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틈만 나면 백화점에 들러 계절마다, 트렌드마다 맞추어 다 입지도 못할 옷을 사고, 매일 아침 단장을 위하여 다 바르지도 못할 화장품을 사며 허세로 가득한 소비의 즐거움만 알았지, 합리적인 소비는 전혀 알지도, 하지도 못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소비의 즐거움과 소유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그런 헛된 것들에 집착 했을까? 후회가 된다.
충격적이게도 미세먼지 문제는 내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다.
미세먼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는데 미세먼지는 소비를 좋아하는 내가 만들어내고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았다. 집안은 이미 포화상태.
나에게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가? 나는 집이 아니라 짐을 얹고 살고 있었다.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매트 여러 장, 이미 읽은 내 책들과 앞으로 몇 년 후에나 읽을 수 있는 아이의 전집들로 꽉 차버린 책장,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온갖 아이용품들,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함을 느끼지 못하는 화장대 위 화려한 화장품들, 그리고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헹거까지.
나는 그때부터 변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 나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비를 줄이고,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 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은 판매나 나눔을 하였다. 집안은 휑해지기 시작하였다.
예전처럼 단장을 할 일이 없어져서 화장대까지 판매를 하였는데, 그걸 본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자기는 나눔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웃었던 일이 기억난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참 많이도 비웠다. 최소한만 가지고 살아가려고 애쓴다.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아직도 정리하고 싶은 물건들이 있고, 때로는 집 정리가 버거울 때도 있긴 하지만, 눈에 보이는 물건을 줄이고 필요 이상의 물건을 탐내지 않게 되니 별 의미 없는 물건이나 일들에 에너지를 덜 쓰게 되고, 나의 공간이 넓어지고 쾌적해지니 집안일을 그만큼 최소화하게 되었다. 간단하고 단순하게 살수록 삶의 질은 더 높아졌다.
복잡한 삶 속에서 앞으로도 나는 되도록 간단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단순히 삶의 공간을 간단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삶의 태도와 관점도 간단하고 단순해지고 싶다. 이런 나의 삶의 태도는 강릉에 와서 더 확고해졌음을 느낀다. 이런 삶을 선물해준 강릉에게 고맙다.
해가 나면 해가 나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예전보다 자연의 가치와 흐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고, 애쓰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아가려고 한다. 지난여름 내내, 온종일 아이와 바다에서 지낸 시간들로 인해 새까맣게 타버린 피부처럼, 나는 강릉에서 강릉스럽게 살아가려고 한다.
강릉살이로 인해 내 마음이 더욱더 단단해진 것 같다. 내 마음속 ‘강릉’이라는 안온한 방파제가 생겨서 든든하다. 오늘도 강릉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선물처럼 달다.
내가 좋아하는 레오리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에서 프레드릭이 햇살, 색깔, 이야기를 모은 것처럼 나도 강릉에서 나의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들을 더 차곡차곡 모아봐야겠다.
앞으로 어떤 것들이 더 모아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