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의 서러움
강릉-
오래전 누군가에게는 바닷가 작은 도시, 바다 바라보며 회 한 접시에 술 한잔 기울이는 심심한 관광지였을지 몰라도 최근의 강릉은 다르다.
미세먼지를 피해서, 자연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도시의 권태와 피로를 벗어 던지고 싶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을 등지고 강릉으로 오는 이주민들이 늘고 있다. 이런 이주민들은 강릉에서 새로운 풍경을 속속 만들고 있다. 강릉은 이제 더 이상 심심한 바닷가 작은 도시가 아닌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을 사는 이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 되고 있다.
2019년 3월, 강릉으로 이사를 하고 남편의 사업장 장소를 알아보며 나는 강릉을 더 많이 알아가고 강릉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하여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계획했다. 앞으로 어떤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 가족의 강릉살이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남편이 전화로 문의한 부동산은 족히 스무 군데도 넘을 것이다. 사정을 설명하며 사업장 장소로 추천받을 만한 곳이 있냐는 물음에 부동산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무뚝뚝했다. 심지어 “없어요”라고 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분도 계셨다. 남편은 당황했지만 괜찮은 척하며 마땅한 곳이 있으면 연락 바란다며 부동산 이곳저곳에 연락처를 남겼지만 한 군데에서도 연락은 다시 오지 않았다.
‘없는 말 조금 더 보태어 서울 같았으면 없는 땅도 만들어 올텐데... 우리가 타지인이라는 게 느껴져서 그런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강릉 사람들의 무뚝뚝함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불친절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정보도 많지 않아서 답답했던 남편은 나가서 알아봐야겠다며 무작정 발품을 팔기 시작하였다. 발품 판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남편은 본인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마땅한 장소를 찾았고 우리는 그 땅을 샀다.
땅을 샀으니 건물을 지어야 했다. 기껏해야 조립식 건물 정도 일 거라서 쉽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오산이었다. 우리 인생에 처음으로 짓는 건물이니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일단, 지인도 없고 정보도 없는 곳에서 건축사 찾는 것도 일이었고, 시공업체선정도 쉽지 않았다. 조언해주는 이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는 어린이집 대기 상태라서 가정 보육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남편을 많이 도와주지 못했고, 결국 남편은 외롭게 혼자서 다 해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남편이 참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렵다고 느끼고 모르는 영역까지 다 알아보며 일을 척척 처리해 나가는 모습이 어른의 모습으로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때 무지하게 애써준 남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건물은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지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건축사에게 금전적인 사기를 당했고, 건물시공업체 한테서도 손해를 봤다. 지난 일 생각하면 속은 쓰리지만 다 처음 겪어 본 일이고, 그런 힘든 과정속에서도 다행히 마음을 나누는 이가 있었고 나쁜 사람만 만나고 나쁜 경험만 한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인생의 경험을 샀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친화력을 타고 난 남편은 건물을 지으면서도 사람을 사귀어 시공업체 소장님과 스무 살 가까이 되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삼촌과 조카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