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시간들은 너무도 짧았지만 엄마는 나와 아이들을 보고는 활력을 조금씩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힘을 냈다. 나는 올봄 처음으로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엄마로부터 무상을 봤다. 사라지고 떠나가는 것들에 엄마의 삶도 예외가 아님을 받아들이고 왔다. 결국 부모의 삶도 영원으로부터 찰나가 되어 미래의 시간들에서는 부재할 것임을. 거기에 있을 것만 같더라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의 말대로 한 번 피었던 삶은 결국엔 지고 말 것이기에.
나도 지금 이 순간, 아니 하루하루 속에 담겨 있는 매 순간 생의 마지막일 시간을 살아간다. 지금 역시도 그런 시간들이 과거로 넘어가고 있다. 사라지고 떠나가는 것들을 매일 똑같이 받는다고 오만한 착각에 취해 스스로 화수분 같은 시간 속에 놓여 있다고 여긴다. 사실 그 속에는 내가 안고 태어난 죽음과 살다가 그와 함께 돌아가는 것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이처럼 힘이 든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른 것처럼. 그리고 또다시 나는 지금과 다른 나의 모습으로 내일을 살아가겠지. 무한 반복되는 같은 하루가 아닌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는 미래를 그려가며 어제의 하찮았던 내가 오늘 그 누구보다 안 하찮을 수 있는 나를 끄집어내 집을 나섰다. 나는 내 엄마가 꺼져가는 순간에 다시 타올라 삶을 살아내어 줬던 것처럼 내 안에 괜찮고도 괜찮은 가치들을 흔적처럼 남기며 살자 다짐했다.
엄마와 오래간만에 통화를 했다. 그간 아빠는 동맥경화증으로 수술을 받았고, 많이 아팠다는 말을 전했다. 아빠는 나에게 직접 당신이 전립선염에 걸려 소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고 냄새나는 옷 때문에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말을 담담하게 해 줬다. 그런 당신을 병원에 데려가고 돌봐준 것은 산영언니라고. 그리고 차마 산영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 하겠으니 나에게 자신을 대신해 꼭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산영언니는 아빠가 너무 싫고 밉다고 푸념이 아닌 하소연처럼 해대면서도 아빠의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서 챙기고 있다. 아빠 역시도 십 년 세월 동안에도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겨우 계절 하나를 거치면서 자신이 그토록 냉대했던 딸이 부모조차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주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엄마는 자영언니가 형부에게 그랬던 것처럼 측은지심(惻隱之心)처럼 아빠를 거두며 남은 삶을 엮어 나가는 듯했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남편을 이제는 불쌍한 인간이라며 여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하나 들지 않는 남편을 그저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가 현재의 근거가 되지 않는 오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이 가졌던 모든 기대를 내려놓으면서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부터 상대를 이해하고, 정의 내리고 판단해 버리면 그간 가져왔던 기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아빠는 지난봄, 모진 말들로 당신에게 상처들을 남기고 온 막내딸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정말 잘하고 있다고 자랑스럽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타지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 네가 1등 엄마야.”라며 아무것도 아닌 나의 존재에다가 자존감이란 두꺼운 옷을 입혀준다. 누구나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평범에서 비범으로 격상시켜 주는 말속에 나는 아빠를, 어린 날의 추억 속에 있던 나의 아빠를 느낀다. 그래, 아빠를 이제와 미워하면 뭐 하겠나.
날씨가 유난히도 화창했던 내 어린 날의 봄, 아빠가 내게 주었던 선물의 포장을 풀자 그 안에 가슴팍에 예쁜 나비가 수놓아 있는 핑크색 상하복이 들어있던 그날이 떠올랐다. 옷 속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나와 방 안을 날아다녔던 신기하고 놀라웠던 기억들이 다시 펼쳐졌다. 나는 어쩌면 그날의 나비가 진짜가 아니라 나의 환상이었던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몇 번을 곱씹어 기억의 테이프를 돌려봐도 그건 진짜가 맞다. 그날 기억 속의 나비처럼 나의 마음을 선물과 같은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주는 아빠의 말들에 나는 또 한 번 내 기억 속의 생생한 아빠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시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아빠의 무상을 바라보고 있다.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육안으로 감지가 되는 아빠.
하여 나는 줄이 그어져 있는 노트북을 꺼내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고... 그 나른함과 따사로움으로 엄마를 기억한다고... 여름날의 초록 강물과 같이 아빠를 추억한다고.....
내가 단 한 번도 표현해 보지 못했던 말들에 어색해하며 나는 수차례 문장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비유는 나의 손발을 오글거리게 했다. 결국 나는 식상한 말들로 그리고 아주 평범하게 채워버린 편지 한 통을 한국에 부쳤다. 타지에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마음을 표현해 드리는 것밖에는 없다는 걸 알지만 거추장한 수식어로 분량을 채워 넣은 편지가 아닌 담백하게 할 수 있는 말들에 진심을 담아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해져 버린 글들을..
그렇지만 나는 남은 시간에도 엄마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가 엄마를 얼마큼 사랑했었는지, 엄마에게 돌려주는 것만이 엄마의 삶을 피우는 것이고 그렇게 나는 엄마의 삶을 피워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내 어린 날 옷 속에서 튀어나온 나비처럼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줬던 아빠. 어떤 이는 단 한 번도 온전하게 받아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던 아빠의 사랑으로 나는 아빠를 기억하고자 한다. 나는 당신들이 가진 전부를 그 모든 것들을 모조리 흡수했다.
내년 봄에도 엄마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아빠도. 상황도 어쩔 도리 없게 만들 내 의지로 말이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넉넉하고 향기롭게 피워내는 딸로 맺어져야겠다. 마음은 따뜻함으로 충만해졌지만 내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이듬해 나는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만나러 가지 못했다. 아니, 한국으로 나가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