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뉼이 Oct 26. 2024

사라지고 있다. 내가 가진 하부의 것들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가을,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나흘 앞둔 그 날 우린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남편은 지금 가진 건 없지만 자기와 결혼하면 10년 안으로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나를 가장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나에겐 그 말이 좋다거나 감동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왜 이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경제적 형편을 가지고 경쟁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부를 누리는 동창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 얘기는 하겠지만 그건 대화의 신나는 화제로서 기능을 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걸 내 삶으로 끌고 들어와 나를 불행하다고 정의 내릴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 친구보다 반드시 더 잘 살아야하는 것도 아니고 못 산다고 해서 불편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내가 시집을 못 갔다는 말들을 싹다 긁어 모아 그 위에 우뚝 서서 죄다 짓밟아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사를 오면서 남편은 자신의 말이 가시화 되는 기념비적 날을 맞이하는 것처럼 벅차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넓은 마당. 그리고 뒷마당에 울창하게 솟아오른 월넛 나무들이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고 그 뒤로는 졸졸졸 흐르는 작은 실개울 덕에 공원 속에 지어진 것 같은 2층집.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일랜드 식탁과 함께 또 하나의 식탁을 넣을 수 있는 주방, 그리고 그 안쪽에 붙어 있는 다이닝 룸. 야마하 자동연주 그랜드 피아노 디스클라비아가 한 켠에 자리 잡은 패밀리 룸에, 햇볕이 따사롭게 들이 쬐는 오후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리클라니어 체어를 배치해 둔 리빙룸.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넉넉한 공간이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값은 한국에 비해 합리적이었다. 강남의 아파트 한 채의 집값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2층에는 규림, 규빈, 규리 아이 셋은 개별 화장실이 딸린 방을 각각 하나씩 가지고도 애들 방을 다 합친 크기의 놀이방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안방에는 두 개의 드레스룸과 화장실이 딸려 있었는데, 그 사이즈는 한국 살던 아파트 거실보다 컸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풀 사이즈 지하실 중앙에 있는 유리문을 열면 뒷마당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워크 아웃 형태였고 이듬 해 봄, 남편은 텅 비어 있던 지하실을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1, 2층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치는 공간이었건만 공사를 해 놓으면 쓸 일이 생긴다는 논거로 일사분란하게 공사를 추진했다. 세 달 간의 시간이 걸려 완성된 공간에 남편은 자신의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이층 침대를 놓고 터를 잡았다. 그렇게 2층 안방과는 별개의 공간을 마련해 나와는 마주칠 일이 없는 동선을 그리면서 함께 살았다. 집이 커진 만큼 그만큼의 물리적인 거리 또한 커졌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얼굴조차 볼일 없는 남이 되어갔다. 학창시절 화장실에 갈 때도 혼자 가지 않고 친구 손을 잡는다든지 아니면 팔짱을 끼며 가던 나에게 철저하게 고립되는 생활은 어울리지도 가당치도 않았다. 

“미국에서는 친구들끼리 이렇게 다니면 레즈비언이라고 한 대.”하면서 손을 더욱 꼭 잡았던 10대 시절의 나는 미국에 와서 빈 공간들을 철저하게 견뎌내야 하는 30대로 성장해 버린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풍요로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에 흘러내렸다. 


그런 나는 달력 한 장만 넘기면 결혼기념일에 동그라미가 되어 있는 그 페이지에 멈춰섰다. 그 해 여름의 끝자락에서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빈곤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가파르게 미끄러지며 가난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하부의 것들이 사라지는 경험 속에 서서 그것들이 다시 나의 상부의 것들을 지배하는 기괴한 체험을 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옳았구나.’ 인간이 만든 부속품에 인간이 매몰되는 인간 소외에 나도 예외가 아니었구나. 별 거 없었던 나는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고 하찮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나의 모든 흔적이 검은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춰질 수 있도록 흩어지고 싶었다. 더 이상 내가 세상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면.... 그리하여 나의 부재가 남편에게 공격되고 그 끝은 사무치는 아픔이 되어 남도록 나를 없애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나를 도저히 찾을 수 없도록.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마주하기조차 힘든, 부인할 수조차 없는 가난이 뿌리부터 내 그림자를 타고 올라 무능으로 변태했고 그나마 가난이 적게 드리워진 면적에 발을 딛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을 때 그곳엔 남편이 있었다. 가난에 점령당해버렸을 땐 홀로 설 수조차 없었다. 이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돈이 없었다. 이혼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남편은 잘라도 잘라내도 생태를 파괴하는 붉은 손이 재생하는 불가사리처럼 마냥 나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집안에서조차 나를 줄곧 피해 다녔던 그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벌컥 벌컥 뛰고 있는 심장, 그 내부에 역동하는 선혈에까지 끈적하게 흡착해 내가 쥐고 있는 고통을 더욱 아프게 낚아챘다. 남편은 끝도 없는 아픔에 비명에 가장 격하게 그리고 감히 내게 파고 들어 크고 단단하게 응축했다. 떼어낼 수 없는 상처 속으로 내가 삽시간에 웅크려버린 것은 이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남편에게 갇혀 버렸을 때 나의 모든 긍정은 부정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루하루가 절망에 허우적 되고 있는 시간의 조각 속에서 나는 온 힘을 다해 이를 유예시키는 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부정을 부정하고 해내며 현실을 왜곡한 정신 승리 속에서 위안을 찾고 있었다. 


이게 꿈일 수만 있다면... 아니, 며칠 코마에 빠져 있던 거라면... 

‘그래, 이건 현실일 수 없지.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 이건 진짜가 아니야. 이건 깨어나면 아무 것도 아닌 가짜일 뿐이야. 이건 가짜야.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돼. 한 숨만 자고 일어나면 이건 다 사라지고 없어질 허상들이야.’

잠들기 전 온 힘을 다해 주문을 걸었다. 이건 진짜가 아니라고..  그렇지만 까만 밤을 하얀 해가 밀쳐내고 빛의 감각을 내 눈동자 사이에 쏟아 넣을 때 나는 눈을 뜨고 리부팅되지 않은 현실의 아침을 맞이해야만 했다.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 오늘.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야하는 악몽이, 내 삶인 그런 하루를. 


오늘 하루도 나는 무기력을 잉태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그나마 남아 있던 생기는 말초를 통해 빠져나가 공기가 되고 그 빈 자리를 채우듯 번아웃은 시발됐다. 하루에 하루를 더해 파국으로 가는 고통 속에서 수많은 우울은 불행과 손을 맞잡았고 숱한 한숨들은 포개진 입술 사이로 터져나와 눈물과 함께 무겁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둠의 혀가 축축하게 한웅큼 뇌를 핥고 간 차가운 온기 탓일까? 나는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도 눈물샘 바닥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농담처럼 인식했다.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나는 매일 같이 꿈을 그렸다. 빚이 청산된 그 후의 삶들. 그 시간만큼은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짧지만 강렬한 환상에 취해있을 수 있었다. 불빛이 환하게 켜지면 내 아이들과 근사한 외식을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살 수도 있었다. 그 속에서 휴가지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들이 있었다. 그런데 소녀가 켰던 찰나의 행복은 자꾸만 매섭게 사라져갈 뿐이었다. 그렇게 현실이 드러날 때 즈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것들은 희미해져가며 차가운 슬픔이 눈폭풍처럼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쳐 내 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저 내가 만져 보지도 못했던 돈들을 갚아야 하는...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가 45도 각도로 천천히 기울더니 삽시간에 지구를 뒤집어 놓았다. 방문을 여는 소리가 가녀린 울음 사이를 뚫고 귓가를 타고 끝없이 이어져 내렸다. 내면의 무의식이 외면의 의식과 손을 맞잡고 남편을 모로 세워 놓고 채찍을 하며 냉큼 털어냈다. 거대했던 세계가 티끌이 되어 떨어지듯 내게 붙어 있던 그가 힘을 잃고 말았다.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해방의 쾌재였다. 그래, 조금 더 진작이어야 했다. 


문득 나는 각성했다. 분쇄되는 나의 삶의 날카로운 한 조각이 남편의 가슴 한 구석에 깊숙이 박히도록. 그가 내 삶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남편의 인생의 상처로 저주가 되었으면 했다. 내가 처한 이 현실의 비극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는 남편이 보는 눈앞에서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죽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뜨거운 피가 중력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참혹한 나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그의 심장과 기억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싶었다.  


남편이 망했다는 사실은 나를 흑화시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