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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뉼이 Oct 27. 2024

카프카 변신, 인간 소외의 비극

카프카의 변신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1883~1924)의 말이다. 카프카는 자신이 정의한 책의 기능과 의미처럼 사람들의 정수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외면하고 싶은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인간 본능을 직면하게 하는 책을 썼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바로 '변신'이다. 


『변신』은 제목에서처럼 ‘변신’이라는 모티브가 책의 주요 사건으로서 처음과 끝을 이끈다. 여기에는 주인공의 외면적 변신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의 내면적 변신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물질화, 상품화가 낳는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할 수조차 없는 인간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제적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 존재 또한 무가치해진다는 것을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확인시켜내는 과정은 꽤나 불편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직면하며 씁쓸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것은 인간이 벌레가 되어버린 끔찍한 상황만큼이나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잔혹하게 진행된다. 물질문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단면이 적나라하고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변신’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참회에 대한 물음표와 느낌표는 카프카 서거 100주기를 맞이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외판원 일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벌레가 되면서부터 경제적 가치 창출은 물론 사회적인 기능을 모두 상실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예 대놓고 허구인 사건 즉 인간이 하루아침 벌레가 되어버리는 설정이 황당함보다도 절망으로 다가오는 건 아마도 우리에게 '벌레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릴지 모른다는 원초적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내가 그렇게 아무 쓸모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가족들이 비정하게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설마’보다 ‘아마’라는 데에 마음이 닿아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인간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또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되는 과정을 분석하며 노동자로서의 인간이 그 주요 결정권을 자본가에게 빼앗기고 무능력해진다며 현대 사회를 사는 개인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바 있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 인간 소외 현상이 만연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잠재적 불안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레고르의 비극은 단순히 작품 속 주인공의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이자 이야기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영문도 모른 채  들이닥친 비극적 현실로 시작된 발단이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떠한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인생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하는 질문을 "현실은 원래 이토록 냉혹한 것이다."라고 명료하게 받아치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레고르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도 점점 차가워진다. 벌레 취급하는 것을 넘어 급기야 아버지는 그가 경제 활동에 방해가 됐다는 이유로 그를 해하기까지 한다. 


이 와중에 가장 극심한 입장의 변화를 보인 것은 여동생 그레테다. 사실 그레고르는 음악에 소질이 있는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돈을 따로 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살뜰하게 보살폈던 동생이었던 것만큼 이 배반감은 배가 된다. 처음에는 그레테도 벌레가 된 오빠의 식사도 챙기고 가장 많이 신경을 쓰기는 했었다. 그런데 벌레가 된 오빠 때문에 가족의 생계원이 된 하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가족들에게 오빠를 손절해 버릴 것을 종용한다. 심지어 오빠는 인간이 아닌 흉측한 벌레이며 만약 저것이 오빠였다면 벌레가 인간과 같이 살지 못했을 것을 알고 진작에 떠났을 것이라며 그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리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벌레를 ‘벌레’라 하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나.'는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킨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나에게 어떤 유익이 되지 않는 사람은 과감하게 손절해 버리는 시대 속에서 여동생의 변신은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황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손절’이라는 말 자체도 주식에서 사용되는 손절매(損折賣, 매입가보다 떨어진 주식을 더 떨어지기 전에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것)에서 나온 말인데 이를 주식이 아닌 사람에게 쓰고 있다는 것 또한 우리가 사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다. 그야말로 인간을 도구화 상품화하여 인간의 가치를 경제의 영역으로 흡수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대표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그레고르의 외형적 변신은 그의 ‘경제력’ 상실을 야기했다면 이로 인한 가족들의 변신은 그의 ‘존재의 의미’를 잃게 만든 비극이 되어버린다.


이런 가슴 아픈 일들을 겪어야만 했던 그레고르는 식음을 전패하고 말라비틀어진 상태의 변사체로 발견이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겉은 벌레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분명 변신 전과 후 내면은 같았던 한 인간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짐을 털어낸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처럼 외출을 한다. 그리고 전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들의 처지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레테를 본 부모는 그녀가 예쁘고 아름다운 처자가 되어버린 것을 발견, 가족의 경제적 지위를 상승시켜줄 가치가 된 것에 흡족해 한다. 이러한 가족이 가지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행복한 결말이 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과 도구로 여기는 탐욕적 만족감이 물질문명의 인간소외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약 인간이 경제적 기능을 잃어버린다면 그의 존재는 어떻게 인식될 것인가?' 하는 질문의 던진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도덕적 딜레마에 관한 질문이다. 가족의 경제적 역할을 담당하던 구성원이 건강상의 문제로 해고, 퇴직 등과 갑작스러운 같은 일이 생기고 이것이 오랜 기간 지속이 된다면 과연 가족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함부로 입에 담기 어려운 답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변으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보여준다. 마치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 힘든 본능을 감싸고 있는 이성을 도끼로 찍어 내어 놓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계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은 “돈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불행은 막아 줄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이처럼 인간이 삶을 영위해 가는 데 있어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위치에 서게 되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펼쳐지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경제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사회 속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잉여인간으로 취급되는 게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행복 추구권’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속에서 인간이 경제적 능력으로 그 가치가 환산되고 평가가 된다면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그 본연의 존엄성이 돈에 매몰되면 인간의 삶은 행복과 요원해지기 쉽다. 물론 돈과 물질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부산물일 뿐, 인간의 존재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 면에서 돈이 인간의 의의를 상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참극을 담아낸 작품 변신이 우리에게 “당신들은 인간 소외에서 벗어났느냐? 물어온다면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 할 지 매번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어느 날 갑자기 한 인간이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모조리 상실해 버린다면 사회 속에서 그의 존재는 어떻게 인식될까?

2. 가족 중 한 명이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어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3. 내가 만약 그레고르라면 자신의 외형적 변신과 가족들의 내면의 변신 중 어떤 것에 더 충격을 받을 것인지 쓰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서술해보자.

4. 우리 사회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간 소외 현상을 찾아 쓰고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서술해보자.

5. ‘현대 사회와 인간 소외’를 다룬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를 보면 물질은 자아가 없고 물질화되어 버린 인간도 자기를 가질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self –estrangement)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자신을 현대사회 틀에 잘 맞는 존재라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자신을 시장에 내놓기 팔기 좋은 상품으로 만드려는데 기인한다고 본다. 인간이 자신을 상품화하려고 할 때 왜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는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 보시오.

6. 현대 사회에 있어서 소외를 극복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이에 대한 한 편에 완성된 논술을 작성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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