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과 개구리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내면에 선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악을 지녔는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백지 상태에서 시작되는 건지에 대해 그 누구도 종지부를 찍을만한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 인간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상황에 따라 선이 나오기도 하고 악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본성의 경우는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에 선이든 악이든 한 가지가 작동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의식이 지배되는 이성적 상황에서의 판단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이 때 자신이 했던 말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개런티도 없다.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우화가 있다.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다. 물가를 건너야하는데 방도가 없던 전갈은 개구리에게 자신을 업고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자 개구리는 네 독침이 나를 찌를까 걱정이 되어 그럴 수 없다고 말을 한다. 그랬더니 전갈은 내가 너를 찌르면 나도 강에 빠져 죽을 텐데 그런 걱정을 붙들어 놓으라고 안심을 시킨다. 전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넜다. 그런데 강 중간쯤에서 파도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전갈은 자신도 모르게 독침을 개구리에게 쏴버린다. 이에 죽어가던 개구리는 전갈에게 물었다. 독침을 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왜 그 말을 어겼냐고. 그랬더니 전갈이 “이게 내 본성이라,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 둘은 강 밑으로 가라앉고 만다.
본성은 이런 것이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날 것의 상태에서 인간은 선 혹은 악 둘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할지가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 중에 내가 죽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 말이다. 물론 이를 사전에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그 상황 속에서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상대방을 죽인다고 답했어도 내가 죽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내가 죽고 말겠다고 했어도 그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개구리와 전갈의 이야기처럼 상황이 닥쳐봐야 아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 “악은 현상이 아니다. 악의 원인을 안다고 물리칠 수 없다.”고 했다. 악은 나타나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성처럼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사실상 악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악은 쉽고 선은 힘들다는 말처럼 악은 악착같이 통제하지 않으면 이내 튀어나온다. 따라서 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가 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 이유가 있다. 선이 우리의 생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악을 벌어지는 상황들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수수방관하고만 있지 않는다. 우리는 악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사회 계약을 통해 국가에 권력을 위임하고 있다. 현대 사회로 나아갈수록, 문명이 선진화될수록 인간은 보다 더 많은 선을 정착하고 구현해 낼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한 본성이 세상을 밝고 맑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환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선’에 대한 실천적인 노력들을 통해 그것이 힘이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다간 악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 문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입장을 정하고 이를 서술하시오.
악은 쉽고 선은 어렵다는 말 뜻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 공감을 한다면 어떠한 점에서 그러한지 설명하시오.
착한 커피는 선을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와 같은 예가 우리 사회에 있는지 찾아보고 소개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