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영국의 언어학자이자 종교학자인 막스 뮐러(Friedrich Max Muller 1823 ~ 1900)가 쓴 유일한 문학 작품인 『독일인의 사랑』은 화려한 수식과 비유가 난무해 내용은 없고 표현만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낭만주의 소설의 특징을 견뎌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겉을 감싸고 있는 표현의 거품을 걷어내고 보면 사랑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통찰적 인식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심장병으로 침대 생활을 해야 하는 마리아와 신분의 차를 극복하고 플라토닉 사랑을 하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다. 마리아가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지만 이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거대한 인류의 바다에 떨어져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스며들며 그들을 감싸 안는 이타적 사랑으로 이어져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삶 속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이성적으로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을 때도 많다. 특히 인간의 영역에서 통제하지 못한 시련들이 그렇다. 마리아라는 인물의 설정 자체도 그러하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시한부 인생 속에서는 그 어떤 인간의 의지 따위가 작동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다른 인물들은 이를 전적으로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는 그저 무기력해지기 십상이다. 이럴 땐 ‘신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맞지도 않는 이유를 찾으려고 분석하는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을 신의 뜻대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와 마리아의 사랑이야기지만 이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마리아를 담당하고 있던 의사의 사랑이야기다. 이 의사는 죽어가는 마리아를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돌봐줬던 사람으로 마리아의 병세가 악화되자 ‘나’에게 마리아를 그만 만날 것을 부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나’의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입장에서는 고통일지 몰라도 의사의 입장에서는 마리아의 생명을 위한 최선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개인의 사생활까지 파고들며 간섭을 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책은 의사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서술한다. 의사는 사실 마리아의 엄마와 과거 연인 사이였던 남자였다. 그는 마리아의 엄마와 서로 사랑을 했지만 신분도 낮은데다가 몹시 가난해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는 와중에 젊은 후작이 나타나 마리아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의사는 자신의 사랑을 희생하기로 마음을 먹고 후작에게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것이 그녀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그 둘은 헤어진 뒤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마리아 엄마가 산고 끝에 생을 마감하게 되는 임종 자리에서 재회를 하게 된다. 그 후 의사는 그녀가 낳은 아이인 마리아를 극진히 돌봐주고 그녀의 생명 연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의사는 끝내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원망보다 그토록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남자의 품에 보내며 돌아서했지만 이 때문에 인생의 남은 시간을 비극으로 허비하는 대신 남들을 돕는 헌신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엔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적 사랑뿐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을 인류애로 승화시킨 어른스럽고 훌륭한 인격의 사랑 또한 만나볼 수 있다. 그 속에는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따져 묻는 것이 아닌 그저 사랑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숭고한 사랑.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닌 내가 그를 위해 세상의 무엇이든 되어줄 수 있는 마음으로 하는 인고의 사랑이 담겨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의 사랑은 의사가 보여준 사랑과 정반대로 세속화되고 돈과 물질 앞에 그 의미조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1910년대 번안소설 ‘장한몽’의 명대사인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좋단 말이냐?’는 질문에 ‘다이아몬드는 못 참지’로 답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이 있고 없고가 사랑의 유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물질과 사랑을 직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쯤도 익히 이해하고 있다. 사랑은 돈이 있고 없고의 객관적인 개념이 아닌 주관적인 감정이기에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이 없다고 해서 사랑을 못한다는 것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관념일 뿐이다. 이런 의식 속에서는 돈이 끝이 나는 순간 사랑도 끝난다. 하지만 인간은 돈 없이도 사랑은 할 수 있는 존재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 또한 그들이 만들어낸 관념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한 사람들이 있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전자의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실체적 진실이다.
영국 스코트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관념은 마음의 표상이며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물질과도 같다고 했다. 따라서 의식은 물론 행동양식까지 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는 관념을 통해 생각하고, 말하고, 때로는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고 지식체계를 구축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관념은 곧잘 허구 혹은 오류,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돈과 명예, 성공, 물질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모든 것을 인간의 의식, 사고, 정서, 감정보다도 우위에 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잘 염두에서 본다면 돈이 없다면 사랑도 행복도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옳다고 받아들이는 신념 또한 관념의 허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새로운 관념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돈이 없더라도 사랑을 실천하며 감사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관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부정적으로 이끄는 것들에 대해 재검토하고 우리의 사유의 힘과 그 역량을 증대시키면서 긍정적인 삶을 선택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언어, 사고, 정서, 감정, 지식 등 모두 실재적이지 않은 관념의 토대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관념을 바꾸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새롭게 변화할 수가 있다. 그렇게 인생의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가치에 관한 우선순위를 새롭게 나열해 나가다보면 돈과 성공이 먼저인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먼저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관념들을 형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무리 이 세상 모두가 부와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할지라도 본인은 묵묵히 사랑과 행복을 통해 자신만의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결국 행복은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라는 것을 터득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현명함을 통해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관념의 허구란 무엇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허구를 찾아 이를 서술해보자.
사랑에는 외부적 조건이 결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의견을 서술하시오.
인간은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입장을 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이 작품과 황순원의 소나기는 어떤 점에서 닮아 있는지 서술하시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이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면 소녀에 대한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나갔을지 상상해서 쓰시오.
내 인생에 있어 우선 순위는 돈과 성공인지 아니면 사랑과 행복인지 하나를 고르고 그 이유를 서술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