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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뉼이 Oct 27. 2024

데미안, 악에 대한 다른 해석

데미안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사회가 세상을 너무 밝고 아름다운 면에 초점을 맞춘 채 이로부터 모든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선과 악의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의 접근으로 인간을 선으로부터 설명해내고자 하는 경향에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이런 물음에 대해 명쾌한 답을 줄 것이다. 


사회가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들춰내는 것에 대한 완강한 거부를 하며 이를 타부시 할 때 그 안에 속한 구성원들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채 위선적 모습으로 남들 앞에 서게 된다. 자신의 페르소나가 곧 자인인양 살아가도록 권장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으므로 마음의 병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의 기준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에 대해 부적응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한다.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의 모습과 현실적 자아의 모습이 괴리하는 상황 속에서 본연의 자아를 수치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는 인간 내면의 악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로부터 비롯된다. 


데미안은 ‘선’에 대한 인간의 강박에 해방을 안겨다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인간 본성에서 드러나는 ‘악’은 감춰야하는 대상이 아닌 인간 내면의 현상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이해에 대한 통찰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의 프레임을 깨고 더 큰 프레임을 형성하는 과정처럼 인간이 선의 틀을 깨고 악을 포함한 차원에서 인간 존재를 인식할 때 우리는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인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두고 작가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다.”고 외치고 있다. 


인간은 사회가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제하고 금기시하는 것들에 대항해 인간의 추악함, 저열함, 비루함 등을 포괄해 자신을 설명해 낼 때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 날 수 있다. 사회의 강력한 기준으로부터 나온 교과서적 삶을 사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는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모든 시도를 응원하듯 마음속에서 솟아나오려 하는 그 무엇에 의해 살아보라고 전한다. 싱클레어가 부모로부터 밝은 세계의 것들을 접하며 자라나는 환경을 전해 받았지만 그는 사실 악당과 탕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에 더욱 끌렸다. 심지어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기 까지 했다.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해야 할 것만 같은 그는 주정뱅이의 아들 불량배 크로머와 엮이면서 다른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크로머에게 호기를 부리려고 한 거짓 때문에 그에게 종속된 채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버리는데 그게 얼마나 괴로웠는지 정신착란 증세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싱클레어는 묘한 분위기에 싸여 신비감마저 느껴지는 데미안을 만난다, 


싱클레어는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는 데미안으로 인해 악을 접하게 된다. 카인이 오히려 남들보다 뛰어난 인물이라 사람들을 이를 두려워했고 그 결과 그를 무시무시한 인물로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의 이마에 난 표식은 용기와 개성의 표창이고 아벨은 오히려 비겁한 인물이었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 속 선량하고 경건한 아벨을 버리고 악과 불행의 카인을 것들로부터 우월한 존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 후로 데미안은 크로머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싱클레어를 그 어떤 폭력의 행사도 없이 구해준다. 단지 크로머에게 싱클레어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뿐인데 말이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데미안은 또다시 싱클레어에게 아리송한 이야기를 꺼낸다. 예수의 최후를 같이한 도둑 중에 끝까지 회계하지 않았던 도둑의 자유의지를 칭송하며 그의 개성을 남자답다고 한 것이다. 악이 선으로부터 묵살되고 숨겨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었다. 또한 그는 생명의 근원인 성생활을 악마의 짓이나 죄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인간의 선과 악 그 양면성을 동등하게 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신에게 예배를 드리듯 악마에게도 그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데미안의 이런 망측한 주장은 사실 싱클레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에만 담아두었던 의문점이었다. 거룩하고 공인된 세계에서 묵살되어 있는 악마의 세계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감히 상상도 못했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 것이다. 


악에 대한 세상의 지배적인 생각에 벗어나 다른 시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놓으면서 이에 대한 그 어떤 수치심도 없이 떳떳한 데미안, 그가 사회의 의도에 대해 회의를 가질 때 싱클레어는 그에게 매료되었다. 자신만의 해석과 주관으로 세상을 재해석해내는 담대함이 싱클레어의 내면 깊숙한 곳의 소리에 용기를 주고 그로부터 밝은 세계에 무비판적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소시민의 싱클레어를 멈춰서게 만들었다. 


방학이 끝나 다른 학교로 진학한 싱클레어는 기숙사에서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또다시 인생의 시련 한가운데에 서게 된 것이다. 같은 시기 그는 한 여성에게 반해버리는데 그녀의 이름을 알 수 없어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그녀를 그리는데 그 그림은 데미안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얼굴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 그것은 자신의 내면, 운명, 수호신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가 그린 베아트리체의 그림은 한 여성에 다한 사랑의 감정이 데미안에 대한 선망으로 맞닿고 이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 이어진 것이다. 


싱클레어가 김나지움에 들어갔을 때 인생의 인도자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피스토리우스고 그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언급했던 신, 압락사스에 대해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신에 대한 이해를 하기 전에 깨달은 인간이 되기 위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고 이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운명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가르침으로 싱클레어를 성장하게 만든다. 


대학생이 된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과 만나게 된다. 이때도 데미안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싱클레어에게 기쁨과 놀라움으로 그를 일깨웠다. 그는 집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반드시 어느 시대나 있고 그들에게는 카인의 표식이 있다는 말을 해준다. 그리고 그가 싱클레어를 재회하면서 단숨에 알아볼 수 있던 이유 역시 카인의 표식이 자신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싱클레어 역시 데미안과 같은 악에 대한 이해가 생긴 것을 의미한다. 


데미안은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을 만나 사랑을 느끼는 데 그 감정이 얼마나 강렬한지 사진의 삶의 유일한 내용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녀를 통해 자신의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찾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자신의 마음이 내지르는 절박한 질문의 답을 찾았다. 그녀는 싱클레어가 본인 스스로를 더 깊은 내면 안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줬다.  


유럽 사회가 세계 최강자의 위치에서 모든 것들을 획득했지만 그 결과 정신은 극도로 황폐해지고 영혼을 잃어버리게 됐을 때 싱클레어는 이와는 반대로 자기가 잃어버린 모든 세계를 자신에게 끌어들였고 자신의 마음속에 온 세계를 지니게 됐다. 그렇게 밝음만을 추구하는 낡은 한 세계의 와해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악을 이야기 하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을 언급한다.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인간을 획일화해내는 사회에 맞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싱클레어의 갈등, 그리고 이를 온전히 지지해주는 데미안. 이 둘의 만남은 싱클레어의 내면의 숨겨놓은 것들을 꺼내어 그것이 갇혀 있던 틀을 부수고 세상 밖으로 나아 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성취를 이끌어 냈다. 주변에 의해 주입받은 선이 아닌 자신 내면의 악을 마주해내고 이를 덮고 갈등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것으로 감싸 안으면서 싱클레어는 더 확장된 시야를 갖추고 진정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작품 안에서는 싱클레어가 니체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 니체는 그의 저서 도덕계보학을 통해 금욕주의 때문에 유럽 전체가 거대한 정신병원이 되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금욕은 영혼과 육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과 건강을 수치스러운 죄로 만든다고 주장한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입장은 이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성생활에 대한 데미안의 분석은 정확히 니체와 같은 것이었고 이를 거부하고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수긍하고 받아들일 때 자신에게서 가장 좋은 결과물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소수가 다수가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을 다수가 받아들이는 데까지 낡고 썩어빠진 세계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가는 새와 같은 개인이 있었기에 다음 세상의 페이지로 나아갈 수 있던 것이다. 기존 세상의 가치관에 부딪혀 절망하고 좌절하는 청춘들에게 그 벽을 깨부수고 압락시스로 날아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 ‘데미안’. 이를 통해 더 많은 싱클레어들이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거인을 깨우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데 용기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생각해볼 문제    

카인과 도둑들에 대한 데미안의 해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보자.


역사의 진행 과정이 소수가 다수가 된다는 의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시오.


선과 악을 통찰해 내야 인간의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악을 드러내놓고 거론하는 것과 이를 숨기고 금기시하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우리 사회에 유익한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보자. 


자신의 인생에 있어 데미안과 같은 인도자 역할을 한 사람을 떠올려보고 그에 대해 쓰시오.


만약 자신이 누군가에게 데미안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면 어떠한 점에서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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