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아닌 가치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알버트 아이슈타인은 1955년 2
월 “LIFE”잡지를 통해 “성공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말했다. 자신이 투자한 것보다 사회로부터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닌 자신이 가진 것들을 사회에 베푸는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후 미국의 수많은 중고등학교 졸업 축사로 이 말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 사회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성공 보다는 인류에 대한 봉사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살다보면 ‘나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손해를 보더라도 관계를 고려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중시할 것인가?’ 이 가치 딜레마에 놓이게 때가 종종 있다.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인간 소외를 해결하는 결정적 방안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인슈타인의 발언은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에스는 집단의 목적에 따라 게마인사프트(Gemeimsc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로 구분을 지었다. 전자는 본질의지에 입각한 사람들이 전인격적 결합체 즉 공동사회를 뜻한다. 따라서 전통이나 관습, 종교가 강력히 지배하고 정서적 일체감 속에서 사람들이 융합해 생활하고 있는 집단에서 그 성격이 잘 나타난다. 이에 반해 게젤샤프트는 계약에 의해 이뤄진 인위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이익 사회를 일컫는다. 서로 같은 목적 혹은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결합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퇴니에스는 현대로 오면서 인류가 게마인샤프트에서 탈피, 게젤샤프트로 향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국가 경제 체제라 여겨지는 자본주의의 지배적 영향 아래 인간은 자아로부터 소외된 채 자기 자신이 부정되고 대상화, 수단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인간 소외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생이 계속되는 한 인간은 생계유지를 위해서라고 노동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이 수입의 정도 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것은 문제다.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의해 종속되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승자독식의 독특한 교육 환경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게젤샤프트로의 진행이 가속화되었다. 경쟁에서 승리한 학생이 모든 것을 가지게 되니 교육 현장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우선하고 인간됨을 가르치는 전인 교육이 뒷전으로 밀리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 교육 현장에는 학업의 성취나 개인의 성공만 추구하는 기형적 형태의 학업 문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뿌리내렸다. 공부를 잘 하는 자가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엘리트주의 속에 온갖 차별들이 비롯되고 이에 대해 관대해지는 기괴한 사회 풍토가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사람마다 상황과 환경이 다르다보니 ‘차이’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구성원 피부색, 신체조건 , 외모, 성별의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빈부, 학력, 종교 등의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차별’을 합리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차이가 차별을 받게 되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점을 세우고 이를 충족하는 집단에게는 이익과 혜택을 주고 그렇지 못한 집단은 소외시키고 차등 대우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선택과 들어간 부당행위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수영, 사이클, 마라톤)의 은메달리스트인 영국의 조너선 브라운리 선수는 멕시코 킨타나루주 코스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종 경기 중 마지막 순서인 10km 마라톤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결승선을 불과 몇 십 미터 앞에 두고 다리의 통제 능력을 잃은 듯한 그는 코너 자리에서 멈춰 섰다. 사실상 경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에 뒤따라오던 형 앨리스터는 경기를 더 이상 진행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된 동생을 결승선까지 부축하여 함께 달렸다. 그리고 도착 직전 동생을 결승선에서 밀어 2등으로 진입시키고 자신이 3등으로 들어왔다. 만약 앨리스터가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해 경기에 임했다면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우승이라는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건강상 위험에 처한 동생의 안전을 더 생각했다. 경기 직후 앨리스터는 인터뷰에서 “경기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지원이 되지 않는다면 선수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동생이 아니었어도 그 누구라도 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동적인 형제애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두 형제가 만든 이 경기 장면은 후로도 역사상에 길이 남은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게젤샤프트 속에서는 개인적인 성공이 우선이 된다면 위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그 뒤로 미루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질 것이다. 인간과 성공 주객이 전도가 되어 가치의 우선순위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돈과 성공의 가치에 매몰된 채 인간 소외를 일으키고 있을 때 우리는 인위적으로라도 게마인샤프트를 지향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데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돈과 성공이 아니어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도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행복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의식과 깨달음이 있는 사회 속에서는 인간이 가진 그 어떤 결핍이나 장애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화근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의미를 찾고 그 안에서 행복을 주체적으로 생산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돈과 성공이 전부인 것처럼 인생을 살게 되면 이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패배자, 낙오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행복해질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게마인샤프트의 회귀를 촉구해 나가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이 다툼 없이 서로 조화롭게 존재하는 것을 ‘공존재’로 정의한다. 공존재는 게마인샤프트로 같은 개념으로 개인들이 이기심을 상실한 단계에 이르고 구성원 모두의 이타심을 통해 우리로 결속해 나갈 때 가능해진다. 이렇게 구성원이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우리’가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룹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개인들은 서로에게 사랑과 지지를 주고받으며 더 큰 자아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공존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개인의 이득과 성취를 인생의 목표로 두기 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위하며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래서 공존재를 구축해 나가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라고까지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인간 소외의 문제는 공존재 안에서 해결해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성공보다 가치를 지향해 나아갈 때 우리 모두는 진정한 천국을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볼 문제
게젤샤프트와 게마인샤프트의 개념을 쓰고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해나가야 할 사회의 방향은 무엇인지 서술해보자.
개인의 성공과 가치 중 나의 선택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서술해보자.
차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차별은 같은 방식으로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의 뜻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자신 의견을 서술하시오.
공존재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고 이를 통해 진정한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2016년 리우 올림픽 철인 3종 경기와 같은 상황이 나에게 발생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한 것인지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시오.
아인슈타인의 말에 대한 자신의 풀이를 쓰고 이를 통해 인간 소외를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