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수현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출판사의 편집자로부터 온 명목상 안부메시지라고 하지만 일이 얼마나 진척이 되었는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문자메시지였다. 수현은 편집자로부터 문자나 전화가 올 때마다 마치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때로는 피하고 싶을 때도 있어서 일부러 안 받기도 하고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계속해서 연락이 오긴 했지만.
오늘도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가 아침부터 그의 휴대폰을 부르르 떨리게 했다.
‘작가님 요즘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아요.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에 앉아 있으면 새삼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답니다. 벚꽃 구경하느라 글을 통 못쓰시는 것은 아니시죠?^^; 그나저나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환절기라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해서 최근에 감기환자가 많다고 하니 작가님도 환절기에 감기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안부문자를 드리는 김에 요즘 글을 쓰는 일은 어떠신가요? 좀 진척이 있으신가요? 진척이 있다고 제발 말씀해 주세용...... 저번에는 글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하셔서 저를 비롯하여 저희 팀에서 걱정이 많았답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지라 작가님이 어느 정도 글을 쓰셨는지 궁금해서 지나가는 길에 여쭤봅니다. 사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보낸 거 이미 작가님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항상 건강하시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수현은 담당 편집자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의를 차려서 빨리 서두르라는 편집자의 전화나 문자는 그에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매일같이 술술 글이 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 봐도 어느 날은 한 페이지는커녕 반 페이지도 쓰기가 힘들었다. 애써 글을 썼다가도 다시 읽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내 모두 지워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뭔가가 매끄럽지 않고 억지로 짜낸 듯한 문구들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배고픔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고 미친 듯이 시간이 가는지 날이 밝는지 모른 채 글을 쓰고 싶지만 꿈속에서나 그런 일이 가능했다. 꿈속에서는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글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마냥 술술 써지고는 했다. 그럴 때면 해맑게 웃으며 만족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꿈을 꾸고 깰 때면 언제나 허탈함과 함께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와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아쉽기만 했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와도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정리해 보아도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와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단 얼마의 시간조차 그에게 힘들게 느껴졌고 단 몇 줄의 글을 쓰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편집자의 문자메시지로 인해서, 요즘 통 써지지 않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짜증이 나 있던 그가 소파에 벌렁 누워서 TV를 켜고 이리저리 화면을 틀어가며 보지도 않을 프로그램들을 리모컨으로 넘겨가고 있을 때 출입문 벨소리가 울렸다.
수현은 그냥 누워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가겠지, 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TV화면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했다. 그러나 벨소리는 또 울렸고 또 울렸고 급기야 그를 일어나게 했다. 도대체 누구야? 하며 모니터 화면을 살펴보니 경숙과 윤지가 보였다. 수현은 모니터에서 통화버튼을 눌러서 경숙에게 말했다.
“어, 무슨 일이야?”
“수현아, 문 좀 열어줄래? 부탁이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좀 그런데.”
“오늘 유치원에서 윤지가 몸이 안 좋다고 연락이 와서 수업하는 도중에 급하게 유치원에 가서 윤지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야. 당장 아픈 윤지를 혼자 둘 수도 없고...... 수현아, 오늘 하루만 좀 부탁할게. 윤지가 아파. 흑흑흑”
수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목을 좌우로 움직여 조금은 짜증이 난 자신의 기분을 달래 보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의 손가락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잠시 뒤에 경숙과 윤지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윤지는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일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경숙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유치원에서 연락을 받고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 거야? 의사가 뭐래? 약은 지었고?”
“유치원에서 갑자기 윤지가 쓰러졌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윤지가 잘 못 되었을까 봐 가는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경숙은 울먹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특별한 증상은 없는 것 같다면서 의사도 확실치는 않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몸이 약해져서 온 탈진 같다고 하더라. 푹 쉬게 해 주고 먹고 싶은 것 잘 먹이고 하면 좋아질 거라고 하면서 아이가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 주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들었어. 약도 지어왔고.”
수현은 경숙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힘이 없는지 소파에 쓰러져 누워있는 윤지를 바라보았다. 윤지의 입술이 바짝 말라있었다.
“우리 집에서 쉬게 할 테니깐 일단 진정부터 해. 그리고 너 수업 가야 한다고 했잖아. 지금 상태로 수업이 되겠어? 일단 의사가 괜찮다고 하니깐 진정하고 가서 오늘 일을 마치고 와. 그동안 윤지는 내가 돌보고 있을게.”
경숙은 수현에게 미안해하며 마치 떨어지지 않을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놓는 것처럼 힘겹게 그의 집을 나섰다. 놀래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경숙의 얼굴을 보니 그의 마음 또한 편하지가 않았다.
그는 방에서 담요를 가져와 가만히 누워있는 윤지에게 덮어주었다. 윤지는 금방 잠이 들었다. 윤지의 얼굴은 핏기가 없는 아이처럼 창백했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듯 숨을 쉬는 소리가 아주 작고 가늘게 들렸다. 수현은 윤지가 잠든 소파 옆에 앉아서 잠든 윤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행여나 윤지가 깼을 때 윤지를 지켜봐 줄 사람이 바로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