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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숙녀 윤지 10

by 자작가 JaJaKa

윤지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약 3시간이 지난 뒤였다. 책을 읽던 수현이 잠에서 깨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윤지의 눈과 마주쳤을 때 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자는 동안 내가 바로 옆에서 너를 계속 지켜봐 주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에서 깬 윤지는 처음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보다 상태가 조금은 좋아 보였다. 창백했던 얼굴도 어느 정도 혈색이 돌아와 있었고 그를 쳐다보는 윤지의 눈빛도 한결 안정적으로 보였다. 수현은 읽던 책을 옆에다가 내려놓고서 윤지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기분이 좀 어때? 아까보다 좀 괜찮아졌니?”


윤지는 커다란 눈망울로 수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말라요.”


그가 가져다준 물을 윤지가 시원하게 마신 것을 보고 난 후에 그가 물었다.


“어지럽거나 그러지는 않아?”


“네”


“다행이다. 아까는 윤지를 봤을 때 윤지가 너무 힘이 없어 보여서 아저씨가 놀랐거든. 그런데 좀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혹시 배가 고프지는 않아?”


윤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요.”


“그래? 그럼 아저씨랑 같이 점심 먹을까? 아저씨도 배가 고프거든.”


수현은 밥솥에 있는 밥을 밥공기에 담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 몇 가지를 꺼내어서 식탁에다가 차렸다. 그리고 윤지와 자신이 먹을 계란프라이 하나씩을 준비했다. 윤지가 자리에 앉아서 차려진 반찬을 보다가 겉절이를 가리키며 수현에게 물었다.


“이거 엄마가 담가준 김치예요?”


“응 맞아.”

“맛있어요?”


“응 엄청 맛있어. 윤지가 엄마 김치 담그는 거 혹시 도와드렸니?”


윤지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제가 옆에서 조금 도왔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김치가 더 맛있었구나.”


수현을 쳐다보는 윤지의 얼굴에 미소가 점점 퍼져나갔다.


식사를 마친 윤지에게 약을 먹이고 난 후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윤지에게 피곤하거나 몸이 힘들면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윤지는 그냥 앉아 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있다가 수현이 조심스레 윤지에게 물었다.


“윤지야. 혹시 윤지가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윤지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는지 아저씨가 물어봐도 될까?”


윤지는 수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두 눈을 껌뻑이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윤지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서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에 우리 반 남자애가 나보고 너는 아빠가 왜 없냐고 물었어요. 다른 애들은 다 아빠가 있는데 너만 없다며 놀렸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엄마한테 왜 나는 아빠가 없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매일 집에 와서 여기저기 파스를 붙이고서는 피곤하다며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왜 아빠가 없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나는 물어보고 싶어요. 내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수현은 윤지가 받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어떤 것이지 알 것 같았다. 어린 윤지에게 아빠의 존재의 부재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친구들의 놀림과 거기에다가 고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봐야 하는 순간들이 어린 윤지에게는 힘들었을 것이고 또한 자신의 아빠는 왜 없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보지 못하는 상황이 윤지를 힘들게 했던 것이리라.


“윤지가 그동안 엄마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런데 아저씨가 윤지에게 해줄 말이 없네. 왜냐하면 아저씨도 윤지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까. 윤지도 알지? 아저씨랑 엄마랑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저번에 우연히 만나게 된 거.”


윤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저씨가 엄마에게 물어봐 줄까? 윤지 아빠가 왜 없는지? 왜 같이 살지 않는지?”


윤지는 수현의 말을 듣고는 잠시 뒤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엄마가 슬퍼하면 어떡해요. 매일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느라 힘든데 또 힘들면 어떡해요. 나는 엄마가 우는 거 싫어요. 엄마가 밤에 내가 자고 있는 줄 알고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파요. 나는 엄마가 우는 게 싫어요. 엄마가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구나. 윤지는 엄마가 우는 게 싫고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엄마는 모르고 계시겠지? 윤지가 엄마를 정말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저씨가 모르고 있었네. 그러고 보니 우리 윤지가 효녀네.”


수현은 고개를 숙인 채 방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윤지의 등을 가만히 토닥거려 주었다. 윤지가 고개를 들어서 수현을 보더니 그에게 다가와 그의 품에 쏙 하고 안겼다. 그런 윤지를 그가 가만히 안아주었다. 윤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따뜻하게 꽉 안아주었다. 아빠 품이 그리운 6살 윤지에게 수현의 넓은 가슴은 아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빠를 상상하게 했으리라. 자신에게 아빠가 있다면 자신을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주리라 윤지는 생각했을 것이다.


윤지가 자신의 속마음을 수현에게 털어놓은 이후에 수현과 윤지는 그전보다 한층 가까워졌다. 그 후로 경숙은 무슨 일이 있거나 윤지를 맡겨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마다 수현을 찾아왔다. 경숙이 갑자기 주말에 특별수업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자 경숙은 늘 그랬던 것처럼 윤지를 수현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갔다.


수현은 모처럼 날씨가 화창한 주말의 시간을 윤지와 집에서만 보내기가 아까워서 윤지를 데리고 가까운 공원에 나갔다. 날씨가 눈부시게 좋고 따뜻해서 그런지 근처 공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제법 많아 보였다.


수현은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서 가까운 의자에 앉아 윤지와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으며 나들이 나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를 보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그런 두 사람을 보았을 때는 여느 부녀관계처럼 조잘조잘 거리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얘기를 하던 윤지가 어느 순간 말을 멈추고는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시선을 따라 수현도 그곳을 바라보았다. 윤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와 윤지 보다 나이가 한두 살 더 많아 보이는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서 신나게 쌩쌩 달리고 있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활기차게 킥보드를 타는 모습을 윤지는 부러운 듯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저거 재미있어 보인다. 그치?”


수현의 말에 윤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윤지도 한번 타보고 싶구나.”


수현의 말에 윤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킥보드를 타며 즐거워하는 아이만을 바라보았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수현과 윤지는 손을 잡고 공원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수현의 손을 처음 잡을 때만 해도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던 윤지는 이제는 먼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고 걸어가게 되었다.


윤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이 수현의 커다란 손을 놓치기 싫다는 듯이 꽉 쥐고서 밝게 웃으며 공원을 걸어갔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나뭇가지에 달렸던 벚꽃들이 흩날리며 두 사람의 앞에서 춤을 추듯이 떨어졌다. 마치 꽃비가 내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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