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그동안 속도가 나지 않았던 글쓰기 작업이 최근 들어 수월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은 윤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꽉 막혔던 머릿속에 청량한 바람이 불기라도 한 것처럼 글을 쓰는데 속도가 붙었다. 뭔가 답답했던 마음이 글을 쓰는 데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은데 그런 그의 마음이 눈 녹은 봄날처럼, 파릇파릇한 초록색의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이제 막 꽃봉오리를 펼치려고 하는 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쭉쭉 써지는 그의 글 쓰는 작업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가 글을 쓰다가 쉬던 오후의 시간에 갑자기 얼마 전에 윤지가 부러운 듯이 바라보던 킥보드가 생각이 나서 인터넷 쇼핑몰에 검색을 해보았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킥보드를 찾아보고 바로 주문을 했다. 가격이 5만 원도 채 안 하는 킥보드를 윤지가 좋아할 만한 핑크색으로 주문 버튼을 누르고 결제를 하고 나니 괜히 자신이 선물을 받는 것처럼 두근두근했다.
이틀 만에 도착한 택배상자에서 킥보드를 꺼내어 확인을 했다. 아무런 흠집 없이 정상적으로 배달된 킥보드를 보자마자 언제 윤지가 올까 기다리게 되었다. 킥보드를 받고 좋아할 윤지를 생각하니 또 이게 무슨 심리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수현은 기다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금요일 오후에 경숙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날씨도 좋으니 가까운 공원에 가서 윤지와 바람이라도 쐬는 것이 어떻겠냐고 보냈다. 경숙에게서 윤지가 너무나 좋아할 것이라며 괜찮은 시간을 알려주면 가겠다는 답장이 왔다.
그렇게 그들 세 사람은 토요일 오후에 공원에서 만났다.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 경숙과 윤지를 향해 수현은 핑크색 킥보드를 들고 나타났다. 처음에 윤지는 수현이 들고 있는 킥보드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가 선물이라며 윤지에게 내밀자 그 순간 윤지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면서 옆에 앉아 있는 경숙을 쳐다보았다.
“어머 윤지 좋겠네. 아저씨가 윤지 주려고 선물을 가져왔나 봐.”
경숙의 말이 끝나자 윤지는 수현을 쳐다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그가 킥보드를 윤지 앞에 세워놓고는 윤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윤지거야. 아저씨가 윤지 주려고 샀지.”
윤지는 너무 좋아 그의 목을 얼싸안더니 “고마워요, 아저씨. 고마워요.”라고 말했고 수현은 “재미있게 신나게 타보렴.” 하고 속삭였다.
윤지는 킥보드에 한 발을 올려놓고 다른 한 발로 밀면서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그런 윤지의 모습을 경숙과 수현이 지켜보았다. 해맑은 표정으로 쌩쌩 앞으로 나가는 윤지의 모습을 보며 경숙이 약간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네가 이런 선물을 가져오리라고 상상도 못 했어. 애 맡기는 것도 미안한데 네가 정말 오늘 우리 모녀를 감동시키네.”
“이것 가지고 감동까지...... 윤지가 킥보드를 타는 모습이 정말 신나 보여서 나도 기분이 좋은걸 뭐.”
두 사람은 킥보드를 타는 윤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 바퀴 돌고 온 윤지가 숨을 몰아쉬며 들뜬 얼굴로 “너무 좋아요. 재미있어요. 또 한 바퀴 돌고 올게요.” 라고 말하며 쌩하고 앞으로 나갔다. 모처럼 기분 좋게 웃으며 즐기는 윤지의 모습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윤지가 지쳐서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두 사람은 윤지의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윤지가 상기된 얼굴로 두 사람이 앉은 의자의 가운데에 앉아서 기분이 좋아 재잘재잘 대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할머니가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며 한 마디를 했다.
“딸이 아빠와 엄마를 닮아서 아주 예쁘게 생겼네. 아주 보기 좋아 보이는 가족이구만.”
할머니의 말에 수현과 경숙은 그냥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윤지는 멋쩍어하는 경숙과 수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가 아저씨를 닮은 데가 있나 봐. 엄마.”하는 소리에 경숙은 “할머니가 잘 모르고 그냥 하는 소리니 신경 쓰지 마.”라고 말했다.
수현은 자신을 쳐다보는 윤지를 향해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아저씨는 예쁜 윤지와 닮았다고 하니 기분이 좋은데? 어디가 닮았다고 하는 걸까? 눈? 코? 입? 귀? 아무리 봐도 귀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하여간 예쁜 윤지를 닮았다고 하니 아저씨에게는 영광이야. 하하하.”
윤지가 수현의 말을 들으며 새삼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아저씨와 입이 닮은 거 같아요. 아저씨 입술도 위로 살짝 올라갔고 내 입술도 그렇거든요. 그치 엄마?”
윤지는 경숙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 경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가? 또 그렇게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맞아 엄마. 아저씨 입술이랑 내 입술이 닮았어.”
수현은 윤지의 입술을 보았다. 자신의 입술 모양과 아주 조금 비슷한 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 닮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그냥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윤지가 생각하기에 그래도 가장 닮은 부분을 힘들게 찾아낸 것이 입술이었던 것이리라. 윤지는 기분이 좋은 듯이, 만족한 듯이 양손을 뻗어서 옆에 앉아 있는 경숙과 수현의 손을 꼭 잡았다.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킥보드를 타고 쌩쌩 달리는 아이들과 아빠와 공놀이하는 아이의 모습들이 어우러져 공원에는 활기가 넘쳤다. 주말 오후시간 다른 가족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세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윤지에게 그날의 주말 오후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즐거웠던 기억의 한 부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