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참 조크든요
5km, 31분 39초, 평균 페이스 6’ 17’’
누군가에겐 빠르고 누군가에겐 느릴 속도.
오늘의 신기록이다.
작년 늦가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20대 초중반 시절부터 마라톤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긴 했는데, 갑자기 어떻게 왜 시작했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로그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는데 생각보다 실현 가능한 일이라 덜컥 시작한 것이었나? 잘은 모르겠지만 수원으로 이사한 다음부터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어 '한강 가까이 살 때 취미 삼았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뭐 그래도 지금 집 근처에도 한 바퀴에 2km나 되는 호수를 둘러싼 공원이 있으니 괜찮다.
이 호수 근처를 달리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8개월 차가 되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노래 한 곡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숨이 차 멈추길 반복했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10분 넘게 뛰는 거지?’ 숨을 몰아쉬며 달리기를 포기한 채 터덜터덜 걸어 집에 오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올해 1월 오타와에서 만난 친구들과 '오타완주’라는 모임을 만들고서야 본격적으로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한겨울 영하 7도에도 쉬지 않고 주 1회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절대 못 뛸 것 같았던 내가 뛰어진다. 꾸준히 뛰니 페이스라는 것도 생겼다. 엄청난 변화다. 하나도 늘지 않은 것 같은데 조금씩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변해간다.
달리기는 여러모로 신기한 운동이다. 30분 동안 일정한 속도로 달리니 지겨울 만도 한데, 이상하게 그렇게 지겹지 않다. 처음엔 이어폰을 연결해 노래를 들으며 달렸는데, 최근에는 이어폰도 끼지 않고 그냥 달린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발걸음의 속도, 나의 허벅지 근육의 쓰임, 다리의 움직임과 일정하게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5킬로의 끝이 보인다. 가장 힘든 구간은 반환점을 돌기 직전이다. 아직 절반이나 넘게 남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생각이 들면 더욱 지치고 힘이 든다. 이럴 때는 손목에 덩그러니 놓인 애플 워치를 보지 않고 나의 몸에만 집중한다. 내 몸은 과연 지금 쉬고 싶나? 나는 더 뛸 수 있나? 잘 달리고 있나? 와 같은 물음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중간지점에서 느꼈던 막막한 고통은 지나가 있다.
신기한 것은 혼자 뛰면 잘 늘지 않는데, 누군가와 같이 뛰면 페이스가 껑충 뛸 만큼 느는 것이다. 빨리 뛰는 친구들을 보며 더 멀어지지 않으려 페이스를 조금 높이다 보면, 생각보다 그 페이스로도 잘 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힘들기야 원래 내 페이스보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그 페이스로 뛸 수 있는 나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역시 발전을 위해서는 약간의 무리함이 필요하다. ‘나는 이 정도인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힘든데, ‘나는 더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조금 더 애쓰다 보면 어느새 나는 ‘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다. 물론 너무 무리해서 다친다거나 그 운동이 싫어지는 상황까지 가면 안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발전은 어렵다.
달리기를 하며 인생은 마치 마라톤과 같다는 비유를 조금씩은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달리기 자체에 그렇게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꼭 달릴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인생마냥 계속 달리게 되는. 나는 왜 달리기를 하는 것일까. 달리기는 내가 절대 못할 것 같은 것을 깨부수어준 장본인이다. 내가 성장해가고 건강해져 간다는 기쁨. 내가 못 하던 것을 해냈다는 뿌듯함. 페이스를 조절하고 꾸준히 해내는 그 순간들을 즐기는 것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생도 이렇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이러나저러나 요즘은 달리기 너무 좋은 날씨다. 달리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조금 무리하는 삶과 편안한 삶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보는 나날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