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10. 승기 또한 짧은 인사 후 말이 없다. 승기는 우현이가 마음에 안 드는 게 분명하다. 승기의 눈만 보면 알 수 있다. 승기는 자리가 불편하면 금붕어처럼 눈을 심하게 깜박인다. 오늘도 우현이를 보자마자 눈알이 요동친다. 눈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승기가 놀랍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창문을 다른 말로 개구부[48]라 한다. 문은 닫는 순간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어줘야 안의 상황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창문은 문을 닫아도 안과 밖의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개구부 중, 창문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해 '우리'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매개자다. 창문을 제외한 다른 개구부는 독립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해서다. 독립성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떠한가? 긍정적으로 느끼는가? 부정적으로 느끼는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연령대를 가늠할 수 있다. 독립성을 지닌 자라면 외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목표를 정해 목표지향적으로 살아간다. 다만,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외부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독불장군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독립성을 지닌 사람은 어느 위치에서 어떠한 역할에 하느냐에 따라서 득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승기는 독불장군이다. 승기의 개구부는 철재로 만들어진 검은색 방음문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떠한 행동을 하려는지 도통 감을 잡기가 어렵다. 분위기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독불장군이기에 회사 내에서 승기의 별명은 독특하다. 승기의 별명은 ‘두리안’이다. 승기가 입을 열면 누군가가 불편해져서다. 이 문제에 관해서 승기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승기야, 상대방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게 좋지 않아? 아니면, 눈치를 좀 주던가. 진짜 깜빡이 좀 키고 들어오라고. 결국, 너도 상대방을 도와주려고 이야기하는데.”
“효상아, 도와주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부서 내에 피해가 뻔하기에 미리 방지하려는 것뿐이지. 그리고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도통 들어먹지를 않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라. 결국,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정신을 차리거든, 아니다. 똥을 먹어도 그게 된장이라고 믿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11. 날 선 승기의 목소리로 죄인이 된 듯하다. 예전에는 무슨 말만 하면 꾸짖는 말투로 답하는 승기가 너무나 싫었다. 세상의 모든 답을 아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깔보는 것 같았다. 던지는 모든 질문이 승기에게는 한심한 하소연처럼 들리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야 승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게 된다. 답답한 노릇이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더는 설명하지 않는 승기가 얄미울 때도 있었다. 타인은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 적어도 난 그렇게 배웠다. 승기는 타인에게 친절하지 않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승기는 말을 어렵게 한다. 승기는 참새를 대포로 잡으려는 심정으로 주제와 상관없이 깊은 대화를 유도한다. 모든 이가 승기처럼 깊은 대화를 원하지는 않는다. 아니, 대부분 가벼운 대화를 원한다. 살아가기도 빡빡한 숨쉬기 힘든 세상에서 작은 호흡의 연명[49]을 위한 대화까지 깊어지면 너무나 피곤해서다. 한 번은 과장님과 이런 일도 있었다.
“승기 씨, 난 이번 생은 망했어. 이생망이라고, 인생 뭐 있어? 술이나 먹자고.”
“과장님, 일어나시죠. 더는 과장님과 술을 마시고 싶지 않네요.”
미친놈인가?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하다. 그냥 넘어가지를 않는다. 기분 좀 맞춰 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이미 과장님은 두리안을 처음 맛본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과장님은 부하직원하고 싸우기 싫었는지, 옆에 있는 내 눈치를 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부드러운 말투로 승기에게 말한다.
“승기 씨, 왜? 형편없어 보여? 그래서 같이 술도 마시기 싫은 거야? 오늘 기분이 너무 별로야. 조금 위로해줘. 까탈스럽게 굴지 말고.”
“과장님, 까탈스럽다니요? 과장님이 기분이 안 좋으면 부하직원은 상사의 기분을 맞춰줘야 합니까? 그런 회사 규정은 어디에도 없는데요.”
12. 역시, 미친놈이다. 놀랍기까지 하다. 이 녀석은 목숨이 여러 개인가? 과장님의 언성이 높아질까 두렵다. 승기가 이처럼 행동하면 한동안 주위 사람만 피곤해진다. 특히, 나, 바로 내가 피곤해진다. 승기의 직설적인 행동으로 간접적 피해를 본다고 주위 동료가 승기에게 몇 번 이야기했었다. 그때마다 승기의 대답은 우문현답[50]이었다.
“과장님이 너를 괴롭힌다면, 이유는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사람은 타인이 밉다고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아. 적어도 사람이라면. 과장님이 동물은 아니지 않나?”
맞다, 이 녀석이 과장님에게 갈굼을 당하는 이유는 학생의 민원 때문이었다. 학생 앞에서 시답잖은 소리로 성희롱 아닌 성희롱 발언과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차별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직도 강의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동기들끼리 쉬쉬하고 있지만, 승기가 이렇게 팩트 폭행할 때면 막힌 속이 뚫리는 기분이다. 단지, 팩트 폭행의 대상이 나라면 싫은 거다. 과장님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48] 개구부(開口部): 집의 창문·출입구·환기구 등을 두루 일컫는 말.
[49] 연명(延命): 목숨을 겨우 이어 살아감.
[50] 우문현답 (愚問賢答):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