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무렵에 핸드폰이 울렸다. K선생이 북구 사무실에 일을 본 후 우리 집을 지나가다가 나와 함께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전화였다. 이왕이면 오랜만에 우리 동네에 오는데 점심을 함께 하면 더 좋겠다고 했지만 오늘 일정도 매우 바쁘다고 했다. 차 한 잔이면 족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설쳐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경쾌하고 발랄한 K선생 목소리는 나에게는 신선한 힘이다.
힘을 내서 부랴부랴 일어나 두유 한 병을 마시고 머리를 감고 그리고 중요한 약 두 가지를 먹고 축축한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렸다. 거울에 보이는 못난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처럼 K선생이 우리 동네에 오는데 우리 집에서 커피를 마실까? 아니면 바로 우리 집 앞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실까? 이런저런 생각이 헤어드라이어를 빠르게 돌렸다.
K선생은 오래전부터 나와 가깝게 지낸 문우다. 어렸을 때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각자 초등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결혼 후 울산에 정착하면서는 동천강을 사이에 두고 살았다. 오래전 우연히 문학행사에서 K선생을 만났다. 그때도 나는 발과 허리가 좋지 않아서 운전하는 것이 큰 곤욕이었다. 그때 마지막까지 그녀가 내 차를 기꺼이 운전해 주어서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자주 만나 문학을 논하고 문학기행도 함께 하면서 같은 방도 썼다. 통화할 때마다 K선생이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강을 사이에 두고 살았다!’
K선생은 나와 정서가 비슷해서 마음이 잘 통한다. 그래서 아무 때나 만나도 편안하다.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않아도 부담이 없다. 아무 때나 전화를 해도 편안하다. 자주 서로 밥을 먹는 사이는 그야말로 편한 사이어야 가능하다. 집에서 밥을 대접한다는 것도 그렇다. 몇 년 전에 K선생 댁에서 점심밥을 대접받은 적이 있다. 맛있는 미역국, 삼색나물, 생선, 야채샐러드, 꽈리고추무침 등이 생각난다. 문인이 차려낸 음식 맛은 어떤 맛일까, 무척 설렜던 날, 마치 고향집 어머니가 차려낸 밥상처럼 모두 맛있었다.
드디어 K선생이 운전한 차가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아침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출근했을 거라는 나의 예측이 적중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제주은희네해장국집으로 갔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해장국을 반도 못 먹었는데 K선생은 해장국을 다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손수 밥을 지어 대접해야 했는데... 많이 미안했다.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안개가 사는 카페(허브캐슬)로 향했다. 겹벚꽃을 못 보고 사월이 지나가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겹벚꽃을 만났다, 그 옛날 내가 숯가마를 수시로 드나들던 골짜기 마을 입구에서. 그 옛날 내가 숯가마를 무척 사랑했을 때, 그때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었을 것이다. 그 숯가마가 있는 산 아래 아름다운 카페에서 우리는 다정히 커피를 마셨다. 비가 오는 날이라 창밖 호수도 정원도 더 운치가 있었다. 나에게는 항상 고맙고 감사한 K선생, 앞으로도 오래오래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