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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Jan 04. 2023

건축기사 에피소드-3

벌거벗은 여인

'와따마~ 바다 하면 부산 해운대 아인겨?'


나는 초등학교 3년 때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 갔다. 야구장이 유명한 사직동에서 중학교, 충렬사가 있는 동래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래서 부산은 내 소중한 추억과 친구들이 있는 제2의 고향이다. 특히나 해운대는 전국에서도 유명하지만 부산 사람이라면 안 가본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광안리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해운대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 필수코스가 있다. 바로 오륙도 관광 유람선이다. 오륙도를 한 바퀴 돌아오는 관광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는 해운대 달맞이고개 초입에서 약간 아래쪽에 있는 미포 선착장으로 가야 하는데 내가 근무했던 현장이 미포 선착장 바로 앞에 위치한 종합회센터 건물 신축 현장이었다.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라고해도 내가 다니고 있는 건설 회사의 본사가 서울 인사동에 있었기 때문에 현장 직원들에게는 숙소가 제공되었다. 소장님과 공사과장인 나, 그리고 전기 과장 이렇게 세 명이서 숙소를 사용하였는데 현장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인 달맞이 고개에 있는 30평대 아파트였다. 내가 잠을 자는 방에서 창문을 열면 멀리 해운대 바다 풍경이 보였다. 해운대 바다 바람을 즐기며 저녁에는 숙소에서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로 조깅도 하고, 건축 엔지니어로서 본분을 다하며 나름 열심이었다. 평생에 한 번 있을지도 모르는 부산의 명소 해운대 현장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더 열심히 근무했었던 거 같다. 


현장 출근은 내가 거의 1등을 도맡아 했다. 사무실은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미포 사거리의 상가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안전모를 쓰고 갑바를 바지 하단에 채우고 안전화로 갈아 신고 현장에 도착하면 오전 6시 30분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면 밤새 경비를 선 경비원 아저씨가 경례를 하고 반갑게 인사로 맞아주었다. 7월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늘 하던 데로 제일 먼저 출근하여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거 같은 붉게 타오르는 바다의 일출을 바라보며 현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경비아저씨가 저만치서 현장으로 걸어가는 나에게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과장님! 어떤 여자아이가 발에 피를 흘리면서 도와달라며 발가벗은 체로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황급히 경비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키는 160 정도. 긴 생머리. 얼핏 봐도 고딩 아니면 대학 신입생처럼 앳되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몸에 실오라기하나 걸친 것 없이 발에 선분홍색의 피를 철철 흘리며 힘없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였다. 7월의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바닷가의 새벽 공기는 서늘했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서 내가 입고 있던 작업복 외투를 벗어서 몸을 가려주었다. 그리고 현장 컨테이너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경비 아저씨에게는 경찰서에 바로 연락을 취하라고 현장 컨테이너로 들어가기 전에 일러두었다. 발에는 유리 파편이 박힌 체 피가 범벅이었고 여자아이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온몸이 바람에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 걸려있던 다른 직원들의 외투로 가슴과 아랫도리가 보이는 것을 가려주었고 따뜻한 녹차를 마시라며 건넸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도착하였고 경찰관들은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여자아이를 에스코트하여 경찰차에 태우고 이내 사라졌다.


그날 오후 경찰관이 연락이 왔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여자아이는 대학 신입생이다. 친구 2명과 대구에서 여름 방학을 맞아 부산 해운대에 놀러 왔는데 부산의 남자 대학생 3명과 3:3으로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고, 새벽 3시가 넘도록 마신 탓에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잠시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대학생 3명과 함께 모텔 이더란다. 남자 대학생 2명은 강제로 겁탈을 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 명이 덮치려는 찰나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는 것이다. 무작정 모텔의 발코니로 나가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하필 뛰어내린 곳이 빈 술병을 모아둔 상자가 있는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제로 끌려간 모텔 방이 2층에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4층이나 5층이었다면.... 그래서 발에 소주병이 깨지며 파편이 박혀 피가 흐른 체 신축공사가 진행 중인 우리 현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새벽 시간에 도움을 청할 인적 있는 곳을 찾다가 아침 일찍 작업을 시작하는 우리 현장에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힘을 다하여 걸어왔을 것이다.


그날 저녁 부산 9시 뉴스에 보도가 되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말로만 듣던 집단 강제 성폭행 사건이 내가 근무하는 현장 바로 코앞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현장 사무실로 중년 여성이 연락이 왔다. 여자 아이의 어머니였다. 현장 소장님에게 딸아이 도와준 직원분들에게 고맙다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사건 담당 경찰관을 통해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남자 대학생들이 부잣집 도련님들이라 여자아이 부모와 합의를 보고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고 했다.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친 대가가 고작 집행유예라니. 역시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고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인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여자아이 모습이 가슴 한켠에 씁쓸하게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가진 몇몇 사회악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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