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야."
나의 지난 연인에게 연락이 왔다.
"나 읽었어."
그 남자가 내가 쓴 글을 읽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며칠 후, 그 사람에게 꽤 공개적인 플랫폼에 우리 이야기를 쓰는 중이라고 말했었다.
파혼하고 2주쯤 후인가, 처음 얼굴을 본 날이었다.
예식장 위약금 문제로 연락을 하던 중 그 사람이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차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날이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집에서 아버지 얼굴을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에서 자는 게 낫다고 했다.
11월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냥 눈이 뒤집혀서 집안에 있는 담요란 담요를 다 들고 그를 만나러 갔었다.
감정이 단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던 때라 얼굴을 보자마자 둘 다 펑펑 울기만 했었다.
한참을 울다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브런치 얘기를 했었다. 분노의 글쓰기를 하는 중이라며 별 말을 다 쓰고 있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무슨 말이든 다 써도 좋다고 했다. 대신 자기는 읽을 자신이 없으니 아주 나중에 읽어보겠다고 했었다. 그랬던 그가 생각보다 아주 빨리 내 글을 읽었다.
"벌써? 아이구. 꽤나 매운맛일 텐데. 많이 맵지?"
장난스럽게 내가 받아쳤다.
문자로는 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보냈지만 이상하게 그가 읽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입이 삐쭉삐쭉,
꽤 오랜만에 눈물이 찔끔 났다.
"죄책감이 너무 든다. 누구보다 날 응원해준 너를 내가 너무 힘들게 만들었네."
"바보 아니야?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그냥 슬퍼만 해."
라고 답했다. 나 생각보다 너무 잘 견뎌내고 있는데 죄책감을 왜?
넌 진짜 눈치가 없구나?
글이 올라오는 텀이 길어졌다는 건 그만큼 내가 많이 괜찮아졌다는 뜻인데.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이어서였을까, 오히려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담요를 전해줬던 날 이후로 오랜만에 서로의 소식을 물었다.
"그거 알아? 우리 아직 서로 헤어지자는 말을 안 했다?"
"그러네."
"그냥 상황이 이렇게 끝이 나서 멈췄지 우리는 여기까지야. 그만하자. 헤어지자, 이런 말을 못 했어."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를 부르던 호칭 대신 이름을 불러.
아침에 일어나서 연락하지 않고, 잠들기 전에도 전화하지 않아.
우리 사진도 다 버렸고 편지도 찢었어.
그날 이후 얼마나 착실하게 너의 흔적을 지웠는지 몰라.
두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을 차근차근 정리해가니 이제 우리 관계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이 보였다.
그 역시 열심히 살아가보려고 아등바등한다고 했다.
할 만큼 다 한 내가 털어낼 건 내 마음밖에 없다. 후회가 많이 남는 쪽이 더 힘들고 미련이 남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나보다 더 날 보고 싶어 하고 일상을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아마 서로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되었을 며칠 전의 대화.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는데도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감정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말을 삭혔다.
"그래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네."
우리는 둘 다 서로가 없는 삶을 꽤 잘 견뎌내고 있다.
이제 나는 거의 울지 않는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난 시간을 하루종일 떠올리지 않는 날이 곧 올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너무 아프게 끝났지만 우리 지금 하는 것처럼 서로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자.
헤어지자 우리.
그동안 고마웠어.
잘 지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