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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Nov 27. 2022

생각을 멈추고 싶어요

자책하는 날. feat. 명상 클래스

 나는 참 자신만만했다.

내 사랑이 옳다고.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지켜낼 거라고.


 그 당당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벌써 아득해졌다.

이제 며칠 후면 파혼한지 곧 한 달이 되어간다.

난 여전히 파도풀처럼 넘실대는 감정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중이다.

어떤 날은 물을 잔뜩 먹어 캑캑대고, 또 어떤 날은 평화롭게 배영을 하면서 말이다.

잠시 허우적대더라도 빠져 죽지 않으니 이만하면 다행이다.

 

 저번 주인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왜 그랬어? 왜?' 이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이런 날은 모든 게 자책이 되어버린다.


왜 그 일을 시작했을까.

왜 거기서 널 만났을까.

왜 그날 같은 택시를 타버렸을까.

왜 쉽게 안주했을까.

왜 널 좋아했을까.

왜 널 끊어내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걸까.

왜! 왜왜!!!


 생각을 멈추고 싶어서 드라마도 보고 인스타도 하고 괜히 부산스럽게 움직이려는데

우연히 명상 광고가 눈에 띄었다.

참 무서운 SNS.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는 웨딩 박람회와 웨딩홀 광고가 그렇게 뜨기 시작했다.

웨딩홀을 계약하고 나니 제주도 스냅사진 광고로 도배가 되었고,

그다음엔 결혼식 포토 부스, 사회자 광고, 청첩장, 신혼 여행지 광고가 시기적절하게 떴었다.

마지막으로 본 광고는 신혼집 가전, 가구 광고였다.


 파혼을 하고 난 다음 날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함께한 사진을 하나하나 지우는 것보단 통째로 날리는 게 쉬웠다.


 그 와중에 동생이 태그 해주는 귀여운 강아지 사진들은 보고 싶어서

아주 예전에 썼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복구했다.

그런데 팔로워도 팔로우도 없는 이 계정에서 "생각을 보내주는 방법"이라는 명상 클래스 광고가 뜨는 것이다.


 소름 끼치게 눈치 빠른 인스타그램 같으니.  

덕분에 충동적으로 클래스 신청을 했고 어제 버스를 4시간 동안 타고 서울로 명상 수업을 들으러 다녀왔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며 움직이는 게 덜 아플 테니까.




 언제나 사람 많고 바쁜 서울.

택시를 타고 명상 클래스가 있는 곳의 주소를 기사님께 말씀드렸다.


 헉... 오 마이 갓.

택시 아저씨는 출발하자마자 이 차, 저 차와 시비가 붙어 


 "뭐 이 새끼야, 강아지 새끼야" 


 등 욕을 하고 난리 난리가 났다. 

옴마야... 스트레스가 확 몰려왔다. 

나 잘 온 거 맞아?


 다행히도 클래스를 다 들은 후에는 '아!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세네 명 정도의 소수 인원이 모여 한 달에 한번 하는 클래스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나 말고 다른 분들이 직전에 다 취소를 했다고 했다.

누구는 코로나에 걸리고, 누구는 급한 일이 생기고....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일대일 클래스가 되어서 당황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주책맞게 울어버린 나 때문에

아... 혼자 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예고 없이 터지는 내 눈물이 너무 당황스러운 요즘이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생각을 멈추고 싶어요."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어느 누구도, 그게 부처나 예수일지라도 생각을 멈추거나 없앨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그런 힘든 생각이 들 때, 어떻게 내 몸을 좀 더 편안하게 하고 그 생각을 밀어내는지 배우는 게 

명상이라고 알려주셨다.


 일대일 수업이 된 덕분에 바닥에 누워하는 명상도 배울 기회가 생겼다.


 밀려오는 생각을 숨으로 밀어 땅으로 보낸다.

내 슬픔과 분노 등 어떤 감정도 땅은 다 받아주고 날 감싸줄 것이다.

그러니 힘든 생각이 들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땅으로, 침대로 내 몸이 닿아있는 곳으로 생각을 흘려보내면 된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불안감을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해졌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엔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시간은 더 걸릴지라도 훨씬 마음이 편했다.

한강을 건너가며 그 사람과 함께 서울에 왔던 날들을 떠올렸다.

올 한 해 결혼 준비를 하며 자주 와서 함께 걷곤 했었는데....


 자책하고 후회한다고 하지만

막상 난 시간을 돌린다면 또 같은 선택을 할 것만 같다.

이 사랑은 옳다고,

이번엔 잘 지켜낼 수 있다며 다시 자신만만해할 것만 같다.

 

 참 철없고 무서울 것 없는 당당함.

그러기에 그 사랑은 빛났던 게 아닐까?


 하지만 시간은 돌릴 수 없고, 난 현재를 살아가니 다행이다.

과거를 자책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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