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추석 연휴 동안에 한 동안 보지 못했던 이웃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중에는 은퇴를 2~3년 남겨 둔 이도 있고, 아직 10년 가까이 남은 동생 뻘도 있다. 술잔이 돌아가면서 누군지 모르지만 '은퇴'가 화두가 되었다. 각자 준비해 온 정도에 따라 이에 대한 생각도 제각각이었다. 각자가 감당해야 할 환경과 사정도 한몫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누구나 은퇴에 대한 걱정과 설렘이었다.
A는 오래전부터 은퇴 준비를 해왔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부동산과 SNS 블로그 활동, 그리고 구매대행서비스 등으로 '제2의 수입'을 차곡차곡 만들고 있었다. 은퇴 이후에는 이런 활동에 더해서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어 하던 것들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도 했다.
B는 공무원이다. 그는 60세로 은퇴하기까지 아직 10년 정도가 남았다. 만약 법으로 정년이 연장된다면 그 이후에도 몇 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도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 자녀도 어리고 은퇴까지의 기간이 많은 남은 까닭에 막연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다른 이는 절제된 생활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봐온 10년 동안 한 번도 허투루 돈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심플/미니멀 라이프를 이어오고 있다. 노후를 위한 대비도 단단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경제적인 준비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들 나름대로 건강 관리도 하면서, 가족을 비롯한 주변 관계도 원만한 이들이라 차후에 격변이 없다면 안정적인 은퇴 후 라이프를 만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약 20년 전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30대 초반, 친한 친구 네 명과 가족여행을 갔었다. 어디였는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저녁 밤공기가 무거워질 때쯤 술기운을 빌어서 내가 한 마디 던졌다.
"야, 우리 누구 하나 너무 잘 나가지도, 너무 못 나가지도 말고 이렇게 잘 지내면 좋겠다."
아마 이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그 밤에 나의 일언(一言)이 오늘 갑자기 떠올랐다. 모두 건강, 재정, 관계 등 은퇴 후를 미리 준비해서 오랫동안 서로에게 좋은 관계로 늙어가면 좋겠다는 생각, 20여 년 전에 친구들 앞에서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렇다. 은퇴 준비를 한다는 것은 큰돈을 벌어서 나 혼자 떵떵 거리며 지낸다거나, 말년의 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경제적 준비와 건강한 몸 상태를 통해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함께 늘려간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함께 한 이들과 나눈 대화가 '은퇴'와 '노후'에 대해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맹목적으로 '돈을 많이 모아야 해'라거나, 보여주기 식의 취미 활동이나 소비활동은 건강한 노후 준비가 아니다. 작은 밥상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웃이 있고, 언제고 흔쾌히 함께 할 수 있는 인간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그 밥상을 차리기 위한 물리적 심리적 준비를 갖추기 위한 과정, 그것이 바로 '은퇴'와 '노후'를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닐까?
명절 연휴, 촉촉이 내리는 빗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담소 속에서 깨달은 노후 준비에 대한 나의 작은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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