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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K에게.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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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Mar 06. 2022

부탁의 어려움(2)



예정에 없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인생 최대의 고비들을 맛봤다. (물론 그때의 기준이다) 

대학교에서의 생활은 재미있었지만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1학년 때는 1학기 2학기 모두 넘치는 F학점으로 학사경고를 받아야 했고(학교에 가던 중에 딴 길로 샜던 적이 많았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대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고, 교양수업 건물이 너무 멀어서 가다 말고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학생회관에 가서 경위서 비슷한 반성문을 썼다. 당시 과 조교로 계시던 고 학번 선배는 “여자 중에 학사경고는 네가 처음이야.” 라면서 학과의 위상을 높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와 친했던 동기들은 1학년을 마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자퇴를 했다. 영화과는 자퇴율 1위, 취업률 꼴찌를 자랑했으므로 담당교수님은 틈만 나면 총장실에 불려 가서 시말서 내지는 경위서를 쓰셨다. 교수님도 나도 경위서 쓰기라면 자신 있었다. 


문제는 부탁의 기로에 놓인 나였다. 1학년 때는 본인 영화를 제작하지 않고 고전 영화사, 현대 영화사, 영화기술 개론, 영화비평 및 세미나 등 이론 중심의 수업이 주였다면. 2학년부터는 영화 제작이 과목에 포함되었다. 뉴욕 필름스쿨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져온 학교의 커리큘럼은 치열하다는 표현이 알맞을 만큼 치열했다. 오죽하면 영화과 졸업하면 이 세상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게 된다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를- 함께 구현할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어려웠다. 나중에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고민을 털어놓거나 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내키지도 않았다. 


천성적으로 부탁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부탁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개중에는 뻔뻔한 사람도 있지만- 사근사근 웃으면서 얄밉지 않고 다정스럽게 목표한 바를 이뤄내는 부탁의 고수들도 있다. 부탁의 고수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예쁜 미소를 반의 반만큼도 지을 수 없는 내 딱딱한 성격을 탓했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전공한 것이 잘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촬영장이야 말로 인간관계의 최전선이자 매 순간 위기 대처능력이 최대치를 경신하는 곳이었다. 부탁은 아쉬운 사람이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인간관계의 덕목 중에 ‘부탁’이라는 덕목이 추가되어야 할 만큼. 부탁하지 않고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영화였다. 스탭을 모으는 일이 아니더라도. 모든 방면에서 부탁해야 했다. (길거리에서는 차량통제, 행인 통제, 식당에서는 손님들에게 양해 구하기, 학교에서는 한창 떠들어야 할 아이들 강제로 침묵시키기 등 부탁의 범위를 글자로 다 적어낼 수 없다)

영화는 민폐 예술이고 영화하는 사람들은 민폐꾼들이다. 훗날 방송국에 취업하면서, 사건 사고 앞에서-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과에서 만렙을 찍고 졸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부탁에 이토록 부담감을 가지고 익숙해하지 않는 것은. 평소에 자주 연락을 취하고 사람들을 챙기는 행위를 좀처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힘들이지 않으니까.. 부탁의 결과물은 언제나 좋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몫했다. 도움을 받았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해.’ ‘이 정도까지는 나와줘야 해.’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 일생일대의 상황에 직면한 것도 아닌데, 지나고 나면 그게 뭐든 용감해질 텐데.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했다. 물론 과정 중에 즐거움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부담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일수록 멋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누군가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벌어지는 문제라고 얘기했지만. 이 모든 어려움이 강한 책임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씩  나아졌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을 아는데도 부탁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 같다. 음. 이런 걸 겪지 않는 사람은 없으려나. 나는 오늘도 모두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걸까. 잠을 빼앗아가는 수많은 생각 중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자기 의심이 극에 달한 이 시기를 무사히 헤치고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손을 놓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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