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k 장녀의 행복찾기
“돈을 뭐 하러 쓰노? 그런 거 살 돈 있으면 돈으로 주라. 땅을 파봐라. 돈 십 원이 나오나?”
엄마의 허름한 옷차림이 마음에 걸려 뭐 하나 사드리겠다고 하면 엄마는 딸 속을 뒤집었다. 엄마의 모진 말은 땅이 아니라, 딸 마음을 파고서야 끝이 났다.
“가기는 어딜 가? 집이 제일 편하다. 편하게 사는 너희나 갔다 와.”
우리도 남들처럼 어디 놀러 가자고 하면, 엄마는 신세 한탄까지 하며 딸의 말문을 막으셨다.
아빠와의 대화는 어릴 적부터 어려웠다 해도, 엄마와 주고받는 말들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갑자기 살이 많이 빠지신 엄마가 걱정되어 건강 검진을 받자고 하면, 엄마는 ‘가만히 잘살고 있는데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하셨다. 친정집에 이 빠진 그릇 하나 버리려면 엄마의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엄마 말로 제일 독한 딸이라는 나는, 이런 엄마에게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누가 더 아픈 말을 내뱉을 수 있는지, 배틀하듯 했다.
엄마와 아빠 사이의 대화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두 분 다툼까지 해결해야 하는 나는 ‘이 불화의 끝은 어디일까?’ 싶었다.
부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선전포고를 하고 삼천포로 내려갔다.
“가까운 곳에 엄마 아빠 살기에 좋은 주택이 나왔는데 한 번 보러 갈래요?”
주택에서 텃밭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는 엄마의 소망을 늘 마음에 안고 있던, 둘째 동생은 괜찮은 매물을 확인해오고 있었다. 기다렸던 괜찮은 집이 나왔고 딸 셋은 이미 꼼꼼하게 답사까지 마쳤다.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하기가 망설여졌다. 엄마, 아빠의 반응이 어떨지 겁이 났기 때문이다. 딸 셋이 돈 모아 부모님 집을 사드린다는데 왜 부모님 반응을 걱정하는지 의아하겠지만 우리 집은 그랬다. 옷 한 벌 사드리겠다, 가까운 곳에 놀러 가자고 해도 돌아오는 건 생채기 남기는 말싸움이었으니 말이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지 고민하던 쥐처럼 우리는 머리를 맞대었고, 가까이 사는 큰딸이 용기를 냈다.
“그래? 오데고? 한 번 가 보자!”
이건 무슨 반응이지? 엄마, 아빠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두 분 엉덩이가 들썩였다. 살면서 알게 되는 신기한 일 중 하나는, 크게 걱정했던 일이 아무 걱정할 일이 아닌 일이 되는 것.
엄마, 아빠는 그 집을 마음에 쏙 들어 하셨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 그 예쁜 집은 곧 우리 집이 되었다. 가게에 딸린 방과 작은 아파트를 오가며 살던 우리 엄마 아빠는 작은 텃밭과 마당이 있는 집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는 그해 여름이 가기 전에 집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가구와 가재도구들을 사고 우리 손으로 이사를 했다. 여기저기 고장 난 곳을 수리했고 집 곳곳을 청소했다. 시멘트를 개어서 창고의 깨진 바닥을 보수하고 마당에 수돗가를 만들었다.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인테리어 공사는 어디까지 하며, 가구는 무엇이 필요한지 의논할 일이 많았다. 용건이 있어 시작한 전화는 이제 나의 습관으로 남았다.
“그래 가 볼까?”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 부모님과의 대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엄마에게 같이 놀러 가자고 하면 이제는 옷을 스카프를 두르시며 얼른 따라나서신다. 아쿠아리움에도 가고 휴양림도 가고 커피숍도 함께 간다.
“그래, 그건 버려도 되겠다.”
혼수로 해 오신 40년 된 그릇도, 심지어 이 빠진 그릇도 못 버리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흔쾌히 버려도 된다고 허락하신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 요한 Ⅰ서 제3장 17~18절 중에서-
부모님이 말씀하시지 못했던 마음을 헤아려본다. 인생을 바쳐 자식 셋을 키워내신 부모님, 노후 준비는 사치였을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두 내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그들의 마음은 부자일 리 없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처지를 헤아려달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채 ‘너희는 내 맘 몰라’ 답답해하셨을 거다.
내 마음을 모르는 것만 같던 딸들이 ‘아빠, 지금 힘드시죠?’, ‘엄마, 주택에 이사 가면 참 좋겠다. 방법을 찾아봐요.’라고 해주어서 고마우셨을 거다.
사랑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진하게 채색될 때, 우리는 그제야 사랑이 있음을 안다. 나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