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이제 수업 안 받을 거예요.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요. 제 교재신청은 하지 말아 주세요."
윤이가 일방적으로 통화는 끊은 이후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윤이는 친구 소개로 나에게 수업을 받고 싶다고 찾아왔다. 직장 일로 바쁘다는 윤이 엄마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이 전화통화만 했지만,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친절했다.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나는 윤이가 어떤 모습의 친구일까 내심 궁금했다.
나를 찾아온 첫날, 또래보다 한창 작은 키에 마스크로 얼굴 반을 가린 채 동그란 눈을 또르르 굴리면서 현관문을 들어선 중1 아이. 별 기대 없이 독서능력 테스트를 했는데 결과를 보고 나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독서논술 수업을 한 번도 받은 적 없고, 평소에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낸다는 아이가 읽기와 독서능력 전 영역에서 거의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아이들에게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결과를 들은 윤이엄마는 예의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님, 우리 윤이 초등학교 때 영재 판정받은 애예요. 원래는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영재애들 수업을 들으라고 학교에서 권했는데 제가 바빠서 못 들었네요."
그제야 나는 윤이의 점수가 이해되었다.
수업할 때, 윤이는 독서에 큰 관심은 없지만, 책을 열심히 읽어오는 게 한눈에 보였다. 글을 쓸 때에도 제일 빠른 시간 내에 완벽한 맞춤법과 구성의 글을 내놓았다. 마치, 오래간 수업을 받은 아이처럼 윤이는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수업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처음의 의지와는 달리 겨울방학이 지나면서 윤이의 수업 태도가 점차 시들해지는 게 보였다.
가끔 책을 안 읽어 왔다고 무심하게 말하고, 수척한 얼굴에 긴 머리카락은 떡이 질 정도로 기름때가 흘렀다.
겨울 방학 동안 윤이가 원해서 대형학원들로 공부하러 다닌다고 들었는데, 학원 오가며 공부하느라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윤이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게 아닌가. 나는 윤이를 깨우면서 "어젯밤에 뭐 했길래 이렇게 졸까?"라고 물었다.
윤이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밤새 게임 했어요. 시간이 그렇게 지난 줄 몰랐는데.... 선생님, 저 너무 피곤해요." 어린아이처럼 응석 부리는 듯이 말하는 윤이 앞에서 나는 할 말을 못 찾고 앞으로 밤에는 게임을 줄이라고 당부만 했다.
이후에도 sns, 게임을 넘나드는 윤이의 폰 사랑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윤이는 수업 때도 넋 놓고 있을 때가 많아졌고, 가끔 글을 쓰면서도 '어렵다' '힘들다'라고 푸념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전과 다른 윤이의 태도가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중학교 애들 사이에서 흔히 겪는 일이라 나는 윤이를 다독이며 수업을 끌고 갔다.
그렇게 새 학기가 되어 중학교 최초의 중간고사 시험을 치른 뒤, 아이들은 수업 때 모여 각자 얻은 시험결과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윤이는 친구들 앞에서 의기양양한 태도로 "나는 전 과목 100점이잖아. 너는 몇 점이야? " 했다.
아이들은 윤이의 점수를 듣고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우와, 너 대단하다."라며 치켜세웠다.
이제 중 2인 어린 소녀가 매일 학교, 학원, 독서실을 전전하며 공부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고생한 아이들을 달래주느라 치킨과 떡볶이로 간식 파티를 해줬고, 아이들은 코로나 이후 오랜만의 간식파티에 흥분해서 모처럼 회포를 풀었다.
그다음 수업, 윤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와서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영수 학원 다니며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이제는 책 읽을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한다.
더 이상 독서가 공부에 효용적이지 않고, 독서하는 시간이 도리어 방해라고 느껴져 수업을 그만둔다는 아이들을 볼 때 나는 슬픔을 느낀다. 독서 자체가 주는 순수한 읽기와 몰입의 즐거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아이들이 독서를 공부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공부머리 독서법'이 베스트셀러가 되듯이, 이제는 독서와 글쓰기가 보다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한 입시의 방편이 된 지 오래이다. 예전 10대 시절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읽었던 헤르만 헷세,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박완서, 최인호 등의 대작가들의 책을 통해 얻었던 그 달뜬 시간의 추억, 은밀한 기쁨을 요새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어린 때, 그림책을 들추며 마냥 기뻐하고, 화려한 팝업책을 들추며 깔깔거리던 아이들에게 더 이상 책은 가슴 뛰게 하는 친구가 아니다. 게임과 화려한 동영상, 각종 SNS를 통해 디지털이 제공하는 온갖 현란한 쾌락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책은 그저 재미없고, 지루한 도구일 뿐이다. 그나마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권유로 수업에 온 아이들도 중학교에 올라가고 본격적인 국영수 공부를 하면서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간혹 수업을 그만둔다.
예전에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 중에도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는데 요즘은 저학년 아이들도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며 그것으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소통하고 논다. 나는 그 폰들을 내려다보며 하루에 수시간씩 폰으로 즐기는 시간에는 둔감하면서 책을 대하는 시간에는 한없이 인색한 아이들의 현실을 실감한다. 이제는 교과서도 디지털로 전환한다는데 앞으로 아이들에게 책이 박물관에나 존재하는 유물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심마저 들 때가 있다.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어떻게 하면 독서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진다. 단순히 공부를 위한 도구로 써가 아니라, 다른 세계와 인물, 사상, 삶을 통해 영감을 받는 이 읽기의 신비를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ᆢ
우리에게는 마치 불행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필요해.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 우리가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한 어떤 이의 죽음 같은 불행, 모두가 사라져서 아무도 없는 숲 속에 홀로 남겨진 불행, 말하자면 스스로 삶을 끝내야 할 것 같은 불행 말이야.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카프카-
누구나 행복해 보이는 웃음과 화려함으로 가득 찬 sns,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우리 아이들이 절정의 불행을 통해서 자기만의 도끼를 갖도록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