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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Dec 28. 2023

어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삶도 노래처럼 흐른다

“엄마, 아빠 건강은 이제 좀 괜찮으세요?”

걱정이 잔뜩 묻어난 큰딸의 목소리에 엄마는 예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시며 전화기가 떠나갈 듯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어휴, 말도 마라. 네 아빠가 하도 아파해서 엊그제 전복을 사다 죽을 쑤어 줬잖니? 그동안 곧 죽을 듯이 골골거렸는데 그거 먹고 이제 조금씩 기력을 회복 중이다.”  이전에 비해 한층 들뜬 엄마의  목소리에 염려로 달싹였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사지를 못쓰는 채로, 자리에 누워 생활하시는 아빠를 위해 엄마는 매 끼니 직접 떠먹여 주시고, 그 육중한 몸을 화장실로 직접 끌어 주며 돌보신다.  한 때는 철이라도 옮길 듯, 우람하고 단단했던 아빠의 몸이 이제  푸석거리는 낙엽처럼 속절없이 야위어만 간다.


아빠는  최근에 몹시 심한 기침으로 곤욕을 치르셨다. 폐의 기능이 떨어져 기침조차 시원하게 못하시가릉거리고 나면  그나마 있던 기운마저 다 떨어져 식은땀을 잔뜩 흘린 채 숨을 고르곤 하셨다.


심한 감기 몸살로 아빠가 나날이 여위어 갈 때, 엄마는 온갖 좋다는 약재며, 음식들을 공수해 아빠를 섬기느라 나날이 초췌해지셨다.


친정에 찾아간 날, 이전에 비해 한결 핼쑥해진 얼굴로 엄마가 말씀하셨다.

“네 아빠 노후는 내가 지킬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아무 염려 하지 마라.”

다소 비장함이 느껴지는 엄마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아빠가 젊은 시절 장애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신 이후, 평생 우리 가정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해오셨다. 세 딸을 키우기 위해, 온갖 장사부터 사업까지 그야말로 안 해 본 일 없이 억척스럽게 살아오셨다. 

 

우리가 어린  시절,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피로가 겹겹이 내려앉은 고단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오셨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아침 일찍부터 생업 전선으로 나가 가정을 위해 투사처럼 맹렬하게 자신을 산화시켜 세 딸을 대학 공부, 결혼까지 시키시고, 이제 8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로 늙어 가신다.  


그런데 노년에 접어들어 이제 한숨 돌릴만할 때, 자리에 몸져눕게 된 아빠.  그런 아빠 곁을 지키느라 매일 간병하고, 일도 하며 지난한 일상을 기꺼이 감당하시는 엄마의 결연한 표정에서 나는 아빠를 향한 초월적 사랑을 느낀다.


“엄마, 예전에는 엄마가 집에 와서 힘들다고 아빠에게 잔소리 많이 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엄마가 아빠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돌보시다니, 세월이 약인가 봐요?”

딸의 짓궂은 말에 엄마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때는 워낙 먹고살기 힘들어 그랬지. 내가 왜 이 결혼을 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네 아빠 원망도 많이 했지. 그런데 너희들 다 키워서 이제 먹고살만해지니 네 아빠가 너무 가여워 이제 나라도 챙겨 줘야지 싶더라고.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인생에 여한이 없을 것 같아.”

 먹고살기 빠듯해 매일의 생계를 전쟁같이 치러내던 시절, 삶의 무게가 버거워 엄마는 늘 습관처럼 무거운 한숨을 내쉬셨다.  그리고 그 곁에 미안한 마음으로 엄마 대신 딸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청소 등을 도맡아 해 주시던 아빠가 있었다.  


불편한 장애를 안고 빨래와 청소, 반찬 등을 도맡아 하며 엄마를 내조하려 애쓰셨던 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를 대신해 험난하고 거친 생계 전선에서 세상의 멸시와 차별에 온몸으로 맞서 억척같이 당신의 젊음을 다 산화해 낸 엄마.     


숨 가쁘고 눈물겨웠던 과거의 수고를 뒤로 하고, 두 분이 조곤조곤 대화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어느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노래가 떠올랐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부모님의  삶도  노래처럼 유유히 흐른다.  




2024년 새해가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더 많이 마주하고,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주어진 모든 순간을 충만히 누리시는 새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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