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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n 22. 2024

베트남전 참전 용사는 아니지만

당신 삶의 용사이십니다

명절날 온 가족이 모처럼 모여 집안이 북적북적한 와중에 아빠가 무슨 중대 발표를 하듯이 당신 세 딸들과 사위를 불러 모으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빠 방문 앞으로 모이니 “이거 봤어?”라고 내미시는데 주민등록증 같은 회원증 하나가 아빠 손에서 반짝였다. 빨간색 사진이 박힌 회원증이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베트남 참전 용사증이라고 쓰여있다.


무슨 사연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보니 아빠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베트남 참전 용사잖아. 그래서 다리를 못쓰는 거 몰랐어?”

아빠의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농담에 딸들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에휴, 아빠. 전에는 무좀 때문에 다리를 못쓴다고 그러시더니 이번에는 참전 용사세요?  이런 건 어떻게 만드셨대요?”


셋째 사위는 진중한 표정으로 한 마디 거든다.

“아버님, 전 이거 예전에 진짜 믿었던 거 아세요? 아버님이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다고 얘기하시길래 진짜 그래서 다리를 못쓰시는 줄 알았다니까요.”


막내 사위의 말에 아빠는 자신의 작전이 성공했다는 듯 화통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셨다.

“아, 진짜라니까. 나 작전 수행하다가 다리 다친 거야. 그래서 여기 회원증 있잖아.”

도저히 아빠의 농담을 더는 들어줄 수 없어 내가 나서 만류했다.

“아빠, 전에는 군대에서 다쳤다고 그러시더니 이번에는 참전용사로 진화하셨어요?”


결국 아빠는 이실직고하셨다.

“ 아는 사람이 하나 만들어 줬어. 이거 있으니까 편해. 사람들이 다리가 어찌 그리 됐냐고 물을 때 매번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이것만 보여주면 되니까. 그러면 눈빛이 달라지더라고.”


 베트남 참전용사 회원증은 실질적으로 쓰이지는 못했고 쓸 수도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아빠에게 어쩌다 다리가 그리 됐냐고 물어올 때나 나름 궁여지책으로 쓰신 듯하다.


아빠는 그 회원증이 꽤 마음에 드셨던지 당신 지갑에 간직하고 다니셨다. 워낙 농담도 잘하시고, 성격이 유쾌한 아빠가 그 회원증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히 있으셨나 보다.


어린 시절, 내가 “왜 우리 아빠만 다리가 아파? 나을 수 없어?”라고 물을 때마다 아빠는 매번 이유를 달리 대셨다. 처음에는 무좀 때문이라고도 하셨다가, 군대에서 다쳤다고도 하셨다. 그러다가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만한 초등학생이 되자 나를 앉혀 놓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다.


태어나서 돌 지날 때쯤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옛날에는 워낙 모두가 가난한 때였고, 1940년대, 일제치하 말기여서 백신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시절이었다고.

그래서 심하게 열병을 앓은 뒤에 낫고 보니 이제 다리를 쓸 수 없어서 아빠는 태어나서 한 번도 당신의 두 발로 걸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는 4남매의 막내인 아빠를 향한 애끓는 부정으로 6.25 때는 직접 업어서 남한으로 피난오셨다. 그리고 그 이후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업어서 등하교를 시키시다가 아빠 몸에 맞는 목발을 구해서 걸을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셨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소아마비가 무슨 병인지 모른 채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아빠가 다 나아서 걸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TV에서 사람들이 기도받고 일어나는 광경을 보며 아빠도 저기 가서 기도받자고 조르기도 했다.  


철이들 무렵부터 나는 더 이상 아빠의 다리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고, 고쳐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게 되었다. 아빠의 다리를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지만 아빠에게 대뜸 그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들을 밖에서는 많이 만나셨나 보다. 그래서 아빠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회원증을 만들어 간직하고 다니셨다.

아빠가 마지막 숨을 고르며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 때 남편이 아빠에게 속삭여줬다.

“아버님, 베트남전에도 다녀오셨잖아요. 저는 믿어요. 아버님은 유엔 참전용사급이신걸요. 우리 아버님 용감한 정신과 삶은 그 이상이니까요.”

'베트남전'이란 단어 하나에 온 가족이  울먹이다가 갑자기 푸훗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아빠의 호기로운 농담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순간이었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 회원증을 잃어버린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는 아니지만 아빠는 누구보다 위대한 당신 삶의 용사이셨다는 것을.


세상에 굴하지 않고, 발로 뚜벅뚜벅, 80평생의  치열한 전투를 감당해 오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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