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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l 18. 2022

가까운 사람은 막 대해도 되나요?

가까울 수록 예의 지키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상처받는 대상은 누굴까?


나는 개인적으로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편하게 생각해서 배려 없는 행동을 하거나 의례 이해해 주겠지 하고  내 임의로 대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정작 상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가족은 또한 타인과 달리 서로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가족이 나의 기대에 어긋날 때 더 실망도 커진다.

살면서 가족에게서 상처받은 가슴속 생채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가끔, 나는 나 역시 가족에게 그렇게 상처 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 하는데 특히 아이들을 대할 때 더욱 그렇다.


세 아들 중 큰애 주환이는 무척 예민한 성품인데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 아들에게 같은 행동을 해도 주환이는 더 상처받을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미처 모르고 키웠다.   아이가 어릴 때 맞벌이로 시댁에 맡기기도 했고 , 두 동생을 2~3년 터울로 낳고 키우느라 마음을 살펴줄 여유가 없었다.


반면 막내 주성이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감정이 다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거나 언성을 높이면 여지없이  나에게 논리적인 말로 항의를 한다.

때로는 불과 중1인 아이가 따박따박하는 말이 너무 논리 정연해서 허점이 있음에도 아이의 말에 수긍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상처를 많이 받으며 자란 아이는 큰애 주환이 이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다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자라면서 나에게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고 늘 순응했다.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가끔 행동으로 불순종하곤 했는데 나는 그것이 아이가 마음을 다쳤다는 표현인 줄 모르고 순전히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여겨서 나무라곤 했다.

그렇게 아이의 상처의 골은 나날이 깊어갔다.

곪은 상처가 터지기 시작한  사춘기에 들어설 때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징후가 시작되더니 중학교에 들어가자 주환이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원치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도저히 아이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전에는 온순하고 말수도 적던 주환이가 화가 날 때는 예전에 비해 부쩍 큰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낯설고 적응이 안 되어 많이 부딪혔다.  엄마의 말로 설득이 될 줄 알았지만 그러면서 아이는 점점 내게서 멀어졌다.     


막내 주성이는 그런 형과는 정반대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넘어가지 않고 따진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사춘기가 올 조짐인지 좀처럼 말을 안 듣는데 늘 나에게 당당하다.  엄마의 잔소리로 자신을 제어하지 말라고 가끔 훈계를 한다.     


지난밤, 늦은 밤까지 숙제를 하지 않고 빈둥거리던 주성이가 잘 시간이 되어서야 숙제를 안 했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진작 하지 그랬느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자 자기 일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치는데 순간 화가 나서

“말로만 하지 말고, 제발 제시간에 알아서 해.”라고 큰소리로 나무랐다.  늘 반복되는 그 상황이 평소에 못마땅하던 차였다.  그러나 엄마의 잔소리에 화가 난 주성이는 나의 눈을 똑바로 보더니 한 마디 한다.


가까운 사람은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건가요? 엄마라고 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나는 주성이의 반박에 갑자기 할 말을 잃고 빤히 쳐다봤다.

이전의 첫째, 둘째는 전혀 하지 않았던 말들인데 정작 가장 어린 막내 주성이가 나에게 그 말을 하니 말문이 막혔다.     


사실 아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우리는 거리가 있는 관계에서는 예의를 지키지만  정작 가깝다는 이유로 가장 친한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말과 행동의 비수를 날리나?

가까운 사이이기에 더 깊은 상처로 남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서 이해하겠지 하며 사과도 하지 않는다.     


아이의 말이었지만 나의 가슴에 비수로 박혔다.

얼마 전 우연히 본 동영상에서 김창옥 강사가 말했다.

가족을 사랑하려 하지 마세요. 그러려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냥 예의를 지킨다고 생각하세요. 가족 간에 예의를 지킨다고 마음만 먹어도 훨씬 부담이 덜 돼요.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편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상처 주고, 아프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이의 마음에 나로 인해 남았을 아픈 상흔을 생각해 본다.

엄마가 무심히 던졌던 배려 없는 말과 행동, 너를 사랑해서라는 미명 하에 서슴없이 강요했던 것들이 정작 아이를 아프게 하는 폭력이 아니었을까?     


나는 조용히 주성이의 눈을 맞추며 말해줬다.

”네 말이 맞다. 가깝다고 막 대하면 안 되지. 그러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 엄마가 그러려던 건 아닌데... “   

  

그날 밤은 내가 살아오면서 무수히 아프게 했을 나의 가족들,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미안해요. 정말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요. “     

나와 가까운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의 관계가 오랫동안 행복하기 위해 예의부터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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