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밥을 먹이려 분주히 상을 차리는데 고3 주환이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나와 식탁에 앉더니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고백한다.
"엄마, 어제 수능 국어 기출문제를 풀었는데요... 문제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더라고요.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호기심이 발동한 표정으로 주환이 옆에 바짝 다가앉은 나에게 주환이가 피식 웃으며 답한다.
좀 더 자라서 오라고 말하더라고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그저 헛웃음만 지었다.
주환이는 자신의 말을 보충 설명하듯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한참 헤매면서 푸는데 나에게 활자가 얘기하더라고요. 넌 좀 더 자라서 오라고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단어와 표현들이 복잡하게 오갔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주환이의 어깨를 도닥이며 말해줬다.
"요새 워낙 국어가 어렵다쟎니. 네가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해. 엄마도 문제를 보니 그런 어려운 문제를 푸는 너희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맞아요. 변증법 문제였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엄마의 말에 한층 힘을 얻었는지 주환이는 변증법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다가 아침밥을 먹고 어깨가 쳐진 채로 학교를 갔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느라 제법 많은 책을 읽는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니 모든 책이 다 쉬우려니 했는데 간혹 철학이나 수학, 의학 등을 다루는 등 10대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이 보기에도 제법 난해한 책이 있다. 또 내가 자의로 골라서 읽는 책들 가운데에도 좋아서 골랐지만 막상 페이지를 열면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책이 있다. 그럴 때 주환이에게 와 마찬가지로 책이 나에게 말을 건다.
‘더 자라서 오라’고
어디 책에만 해당하겠나?
우리 모두는 매일 자라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내가 사는 이 지구, 작은 내 인생 하나 감당하기에도 날마다 성숙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주환이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그런 책이나 인생의 문제들이 닥칠 때 무작정 짜증을 내며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했다.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며 무모하게 부딪혔다가 도리어 실패한 적도 많았다.
아이를 낳고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그것이 용기를 가장한 교만이었다는 것을...
솔직히 내가 모르고 부족해서 더 자라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그것을 통해 오히려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주환이처럼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나에게도 인생에 닥친 문제들이 ‘더 자라서 오라’고 속삭이는 거라고. 그러니 화내거나 짜증 낼 필요 없이, 그저 겸손히 등을 돌려 다시 준비하면 된다.
고3 주환이가 문제가 자신에게 건넨 그 말을 듣고 힘겹지만 다시 도전하듯이 , 나도 힘들지만 거듭 생각하며 다시 도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