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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ug 26. 2022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요

인간관계가 힘들 때 되뇌는 말

둘째 주호가 밤늦게야 들어오길래 어디 갔다 오냐 물으니 친한 친구 한이와 놀다 왔다고 한다.

한이... 오랜만에 듣는 친숙한 이름.


다른 고등학교로 들어간 뒤로 연락이 뜸한 것 같았는데 아직도 서로 친하게 지내나 보다.  

   

주호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한동안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덩치도 왜소하고, 순한 주호가 서울에서  막  용인으로 이사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마땅히 놀 친구가 없었다.  같은 유치원을 나온 친구들끼리 이미 그룹이 만들어져 같은 동네에서도 친한 친구들끼리만 어울려 다녔다.      


주호는 한 동네 사는 한이와 무척 놀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한이는 이미 친한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무리 지어 아이들과 다니면서 주호가 놀자고 다가가면 아이들을 몰고  우르르 도망가곤 했다.


 친구와 무척 놀고 싶어 하던 주호는 그 아이들을 따라가려고 쫓아갔다가 끝내 끼지 못해 울적한 표정으로 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나 역시 막 이사 와서 마땅히 마음을 털어놓고 상의할 엄마들도 없던 차라 그런 주호를 바라만 볼 따름이었다.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늘 외면당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주호에게 그 친구 말고 다른 친구와 어울리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권유했다.


 주호가 혹 상처받지 않았을까 우려하며 조심스레 말하는데 의외로 아이는 천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작 아이는 친구를 이해하고 있는데, 놀아주지 않는 친구가 섭섭해서 같이 놀지 말라 했던 내 옹졸함이  한 마디 앞에서 도리어 부끄러워졌다.      


마침 2학년이 되어 주호는 호기롭게 반장선거에 나갔는데, 0표를 받았다고 울면서 들어왔다.

 " 이름을 네가 적지 그랬냐"고 나무랐는데 아이는 차마 자기 이름을 적지 못했다고 한다.


 그토록 고대하던 반장선거인데 단 한 명도 자기 이름을 적어주지 않았을 때,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조용히 등을 토닥여 주는데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다시 내게 말한다.

엄마,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요.

아이와 내가 함께 눈물이 그렁한 채로 씩 웃었다.      


그렇게 사람을 품어주고 이해하려는 주호의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그 이후 아이는 3-5학년 때까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반장을 했다.


 6학년 때는 치열한 선거운동과 경쟁을 뚫고 당당히 전교회장에 당선되었다.

 이전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때로는 맞기도 하며, 선거에서 0표를 받고 눈물을 훔치던 주호가 전교생들 앞에서 연설하고, 친구들의 선거운동 후원을 받아 치열한 접전 끝에 2표 차로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친구들이 자신을 보고 도망가 버려도 꿋꿋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이해해 온 주호의 진정성과  마음이 이제 세상 속에서 이해된 것 같아 뿌듯했다.      

마침 6학년 때 한 반이 된 한이와도 이전의 기억을 잊고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주호가 말하길

 “ 한이가 그러더라고. 야, 난 너를 예전에 좀 이상한 애로 봐서 상대하기 싫었는데 너,  볼수록 괜찮은 애 같더라. 우리 친구 하자.”    

 

이후로 주호와 한이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어 중학교 시절 내내 빛나는 우정을 나눴다.   

  


인간관계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을 때,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로부터 원망의 화살을 받을 때 나는 주호에게서 배운 말을 애써 상기한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도 부족한 사람이니ᆢ."


내가 겪는 문제가 특별한 것이 아닌 인생 살다가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훌훌 털어 버리려 노력한다.


살면서 제일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가 가르쳐 준 말을 속으로 되뇌며 힘겹게 마음을  추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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