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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가 주는 위로

by 그대로 동행

지난 어버이날 막내 아들 주성이가 선물로 양말, 컵, 편지를 줬다. 아이의 사랑이 기특해서 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양말을 신고 다녔다.

매일 아이가 준 컵을 쓰는데 어쩌다 다른 컵을 쓰면 엄마에게 슬며시 와서 왜 자기가 준 컵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다.

날이 더워져 양말을 벗고 다니면 또 와서는 왜 자기가 준 양말 안신느냐고 묻는다.

아이는 은근히 엄마가 자신의 선물을 사용하는지 늘 궁금해 한다.

나는 ‘아끼느라고 그래. 자꾸 써서 낡으면 아깝쟎아.’라고 아이의 마음을 안심시켜 줬다.

그러자 주성이는 안도의 표정을 짓더니 호기롭게 말한다.


‘괜챦아요, 엄마. 낡으면 내가 또 사줄게.
엄마가 원하면 얼마든지 더 사줄 수 있어.’


빤한 용돈에 어디서 이런 마음 씀씀이가 나올까?

아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데 나는 마음으로 웃음이 나온다.

주성이의 그 말이 하루 종일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얼마든지


참 따뜻하고 넉넉한 말이다.

적당한 거리를 둔 데면데면한 사이에서는 비교적 이 말이 쉽게 나온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내게 ‘얼마든지’ 요구하거나, 허락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드세요. 전 괜챦아요.'

’얼마든지 좋아요. 말씀해 주시면 그 때로 맞출께요.‘ 라고 인심 쓰듯이 말하곤 한다.

어차피 상대는 내가 의미하는 것을 지레 알고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쉽사리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말로 나의 가까운 상대가 받아 들인다면?

차마 그렇게 할 만한 내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호기로운 말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패해도 괜챦아. 엄마가 네 곁에서 얼마든지 함께 할거야.’

‘물건 또 잃어버렸어? 괜챦아. 얼마든지 사면 돼.’

‘공부가 힘들다고? 그럼, 오늘 하루 얼마든지 쉬어. 쉬어야 또 힘을 얻지.”


왜 나는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그리 아끼고 살았을까?


아이들은 이 넉넉한 말을 하지 못하는 엄격한 엄마 밑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 마 든 지‘ 불과 4음절의 말이지만 참 마음을 푸근하고 행복하게 한다.


아이의 실패나 실수 앞에서 늘 대노하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임에도 자신은 저리 호기로운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주성이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나도 저렇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돼야지.

’얼마든지‘ 이 말을 꼭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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