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손을 따라 아기의 다리를 보니 종아리 밑으로 선연한 핏자국 같은 큰 흉터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순간 나는 숨을 못 쉴 정도로 놀랐다.
“ 아기 다리가 좀 이상하니 나중에 병원 가서 검사 한 번 받아보세요.” 담당 의사는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제안했다.
산후조리를 마치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혈관기형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피부 속에 자리 잡아야 할 혈관이 기형이어서 피부 밖으로 드러난 것인데 사는 데에 지장은 없지만 아이가 원하면 수술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수술은 난이도가 높고 위험해서 할 수 있는 의사가 우리나라에 단 한 명뿐인데 경북대 병원으로 가서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당시 살던 서울에서 ktx를 타고 경북대 병원까지 다닐 엄두가 안 나서 수술은 포기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주성이는 다리가 드러난 반바지를 입는 여름 철이면 친구들의 놀림을 받고 울면서 들어오는 날이 잦아졌다.
"엄마, 친구들이 내 다리를 보고 괴물이래요. 저리 가라고 밀쳤어요."
물놀이를 데리고 가면 사람들은 즐겁게 노는 주성이 주변에서 아이의 다리만을 수상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고, 아이는 무수한 시선의 폭력 앞에 주눅 들어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자 주성이는 결국 한 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를 위해 여름에 입을 긴 바지를 알아봤지만 마땅치 않아서, 주성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여름을 나곤 했다. 혈관기형을 가리기 위해 긴바지를 입으면 또 친구들로부터 ‘너는 왜 이렇게 더운데 긴바지를 입느냐’는 핀잔을 듣고 힘들어했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아이에게 무슨 큰 병이 있느냐고 걱정스레 묻곤 하셨다. 무수한 말들이 아이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폭력이 되는 현장을 내 눈으로만 수차례 목격했다. 내가 못 본 상황까지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어깨가 쳐진 주성이 얼굴을 보면서 안아주고 말한다.
"주성아, 하나님이 널 너무 사랑하셔서 이 지구 상 70억 인구 중에 우리 주성이에게만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특별한 표시를 만들어 주신 거야.
널 금방 알아보고 듬뿍 사랑해 주시려고.
그러니 누가 널 놀리면 꼭 말해줘.
이 표시는 네가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증거라고.
이 지구 상에서 너에게만 있는 거라고."
수십 억 인구 중 단 한 사람에게 주어진 특이한 혈관기형으로 인해 주성이는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를 지켜보며 나도 그렇게 사랑하려 노력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세상에서 살게 되고 적대적인 사람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게 된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의 거울이 된다. - 작가 켄 케이스
오늘도 친구들과 놀러 나가기 위해 긴바지를 찾는 주성이가 수십 억 인구 중 단 한 명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세계에서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