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허약하고 체구도 왜소한 주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하루는 그런 주호를 보다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왜 그리 열심히 공부하냐물었다.
그러자 주호가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한다.
“ 엄마, 제 꿈은 동사예요. 얼마 전 '역사의 쓸모' 책을 보고 제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하기로 했어요.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겠다로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물으니 주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 우와, 권주호도 해냈어. 주호 같은 사람이 했으면 나도 할 수 있겠네. 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요. 나같이 게임 즐기고, 놀기만 하던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
주호의 말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잊었다.
얼마 전 금쪽이 프로에서 박찬민 아나운서와 그 딸 박민하가 출연한 모습을 보았다. 유튜브로 일부를 보니 박민하가 배우 최초로 올림픽 사격선수로 출전하는 사람이 꿈이라면서 책도 쓰고 그 책이 영화화될 때 자신이 주연을 맡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 치고는 제법 당찬 꿈을 술술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그런데 오은영 박사는 그런 아이를 보고 ‘자의식 과잉’이라면서,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되느냐보다 네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고민해 보라고 조언했다.
민하가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아빠의 영향이 커 보였다. 박찬민 아나운서와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는 민하와 생각이 다를 때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설명하며 설득했다.
민하는 그런 아빠에게 금방 굴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접곤 했다. 오은영 박사는 그런 민하를 보면서 가족들이 지나치게 가족 중심주의적이어서 민하가 더 넓은 세상을 볼 기회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아이들의 생각을 제한하고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가림막이 된 사람이었다.
그러니 큰애 주환이가 고3인데도 진로를 딱히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꿈을 동사로 얘기하는 주호를 보면서 나는 그간 아이들에게 엄마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며 내가 어른이니 살아봐서 잘 안다고 강요했던 잘못을 반성했다. 설사 내가 옳더라도 아이들이 고민하고 실패할 기회를 줬어야 했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의 실패와 고통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꿈을 동사로 규명하고 고민하는 주호가 고마웠다.
아이도 나도 여전히 성장 중이고 때로는 방황한다.
나도 엄마 노릇이 처음이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많이 서툴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 손에 아이들을 맡기고자 기도하지만 어느새 내가 아이들을 내 품으로 데리고 와서 알아서 하겠다고 우기고 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날개로 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큰애 주환이는 엄마가 권고할 때마다 자신은 경험해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고 한다.
꼭 경험해야 아느냐고 아이를 나무랐는데 이제는 놓아줘야겠다.
아이가 직접 경험하고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삶의 여백을비워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