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대로 동행 Apr 26. 2022

엄마 같은 여자와  절대 결혼 안 해

10대 아들의 외마디 외침

아이들이 10대가 되어 사춘기가 오면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이성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통 얘기하지 않던 주변 여자애들에 관해 얘기를 하고 아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걸그룹이 노래하는 동영상을 넋을 잃은 채 쳐다보는 걸 발견한다.


침대나 책상을 정리할 때 아이가 몰래 숨겨 놓았던 걸그룹의 사진들을 발견하고는 웃음이 터져 나온 적도 있다. 한결같이 긴 생머리에 여리여리한 몸, 화장한 고운 모습이라 아이들이 충분히 반할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사진을 몰래 제자리에 놓고 나온 뒤 나중에 네가 좋아하는 걸그룹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짐짓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한다. 엄마가 그런 데까지 아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 눈치이다.     


첫째 주환이는 고3인데 늘 엄마를 모태 솔로라고 부르듯이 본인도 아직 솔로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을뿐더러 통 이성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여드름이 제법 많이 났는데, 외모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어 그러려니 지낸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주환이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성격이 못되기에 이해가 된다.


둘째 주호는 고1,  우리 집에서 가장 활발한 개그맨 스타일이다. 외모에도 관심이 많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옷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다. 흥이 많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인지 친구들에게 항상 인기가 많다.    그런 인기로 인해 한 때는 여자 친구가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물론 엄마에게는 비밀이었어서 나는 친구 엄마의 제보로 알았다. 그러나 얼마 못가 여자 친구가 이사를 가버렸다고 한다.


셋째 주성이는 중1, 외모지상주의 스타일이다. 항상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잘생겼다고 감탄한다. 이성에게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 애들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한다. 자신이 키가 작다고 무시한다는 둥 , 여자애들이 자기보다 힘이 세서 자기는 맞고 다닌다는 둥, 귀엽다는 말은 싫고 멋지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 자신에게는 귀엽다고만 한다는 둥....     


개성 강한 우리 삼 형제는 모이기만 하면  주로 게임, 학교 선생님, 주변 친구들 등에 대해 얘기했는데 어느 날은 장래의 결혼에 대해 얘기를 했다.


둘째 주호가 “ 엄마, 이담에 장가 가면 나도 엄마처럼 애를 셋 낳을까 해요. 그러면 우리처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는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 주호야, 애는 하나만 낳아도 되니 괜한 고생 할 생각 말고 그저 장가만 가라.”

 진심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비혼 타령 안 하고 이담에 참한 신부를 만나 순조롭게 장가가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다.


손주를 낳아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들끼리 행복하고 예쁘게 살면 그걸로 족하다. 아이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큰애 주환이의 목소리가 커진다.

야, 난 이담에 절대로 엄마 같은 여자와는 결혼 안 할 거야. 우리 엄마 스타일은 좀 그래. 목소리 크지, 억세지, 성격도 나쁘고...”


나는 주환이의 목소리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엄마는 모태 솔로인데 아빠가 구제해주느라 결혼한 거라며 늘 놀리는 아들이긴 했지만 저렇게 엄마 스타일을 거부한다고 얘기할 필요까지 있을까?


내가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자 주환이는 더 목소리를 높인다.

“ 진짜야, 엄마. 난 엄마 스타일 정말 싫어. 난 이담에 엄마보다 예쁘고, 착하고, 여성스러운 여자를 만날 거야.”  

그런데 그다음 주호의  말이 가관이다.

“ 음, 나도 동감이야. 나도 엄마 스타일은 좀 그래.”

분위기를 살살 살핀 막내 주성이는 역시 셋째, 눈치의 제왕답게 분위기를 추스른다.

“ 에잇, 형. 엄마가 어때서? 난 우리 엄마 스타일이 좋은데. 그건 좀 너무했다. ”


그러자 주환이가 되묻는다.

“주성아, 그럼 넌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할 수 있어?”

“.......”

한껏 기대에 들떠 자신을 쳐다보는 나의 눈길을 외면하는 주성이.      


내 속은 바짝 타지만 세 아들은 침묵을 고수한다. 그제야 나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

그래. 엄마 같은 여자 안 만나도 되니까 그저 장가만 가라. 그리고 이담에 알게 될 거야. 우리 엄마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였는지...”

출처ㅡ픽사베이


나도 나 같은 여자를 굳이 만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장가만 가면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엄마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도 원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들 셋을 키우기 전에는 이보다 우아하고 여성스러웠고 멋 부리기도 좋아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저절로 목소리가 커지고 자주 손이 올라가며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성격도 드세졌다. 아이들은 알까? 자기들을 키우기 위해 분투하느라 엄마가 이렇게 남성화되었다는 것을?     


마침 늦은 시간 남편이 귀가하자 아이들이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묻는다.

“아빠, 아빠도 살아보니까 엄마 같은 여자 별로지요? ”

그러자 남편 왈 “왜? 네 엄마는 최고의 멋진 여자야. 항상 우릴 위해 기도하지, 예쁘지, 착하지.”

“에잇, 진짜? 아빠 진심이에요?”

주환이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묻자 남편은 조용히 속삭인다.

 쉿, 엄마가 저기 있잖아. 다 들어.”

이제 알겠다. 우리 집 남자들은 나 같은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훗날 알게 될 것이다. 요리, 청소, 인테리어 등의 집안일도 잘 못하고, 목소리 크고 성격도 드센 엄마지만 나 같은 엄마와 살았기에 세상 웬만한 여자들은 자신들에게 다 예쁘고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우리 아들들의 여자 보는 눈을 낮춰놓은 것만으로 충분히 할 일을 다 했다.

아들아, 엄마 같은 여자 아니어도 좋으니 꼭 장가만 가라!

이전 01화 나의 작은 스승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