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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Sep 22. 2022

나의 작은 스승들

고맙고 사랑한다

엄마와 통화하며 아이들의 흉을 봤다. 엄마 마음을 통 몰라주고 속만 썩인다고 불평하는데 갑자기 엄마의 한 마디

“ 너도 그랬어. 네 옛날 생각은 안나지?”      

순간 머릿속을 망치로 맞은 듯 할 말을 잃었다.


 내가 그랬다고? 스스로 착한 딸 콤플렉스를 자처하며 누구보다도 엄마의 뜻에 순종 잘하는 맏딸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내가 우리 아들 같았다고?  


나는 볼멘소리로 엄마에게 항의했다.

“ 엄마, 어디로 봐서 내가 애들이랑 같았어요? 내가 훨씬 나았지. 나는 엄마 말씀도 잘 듣고 반항도 안 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엄마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 뒷말은 사그러 들었다.     


내 말에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엄마는 반박하셨다.

“네가  얼마나 까칠하고 예민하고 힘든 아이였는지 알기나 하니? 내가 네 성향이 그런 걸 감안해서 늘  잘한다 하면서 기를 살려 줬기에 망정이지,  

 네 아들들이 너보다 훨씬 나아.

네가 엄마에게 반항하고 속 썩인 건 생각도 안나지?

네가 결혼하고 아들 셋 키우느라 그나마 다듬어져서 이 정도야.   애들 덕에 동글동글해졌으니 감사한 줄 알아.”  


 엄마의 말씀을 듣고 보니 잊혔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사춘기 시작되면서, 부모님께 큰소리치고 반항한 건 물론이고, 대학교 때는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고 야단치는 엄마에게 반항하느라 친구 집으로 몰래 가출해서 부모님 속을 썩였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두고 싶다고 매일 하소연해서 부모님을 애가 타게 했다. 사업한다고 주변의 만류를 무시하며  고생길을 자처해서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게 했나?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아이들을 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엄마가 해주는 맛없는 밥도 ‘주는 대로 먹으라’는 가훈을 생각하며 불평 없이 꾸역꾸역 먹어주고, 밖에서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는 씩 웃으며 괜찮다고 표정을 고치는 아이들.

매일 쉬지 않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알았어요’ 하고 쿨하게 받아치는 아이들.    큰소리로 엄마에게 야단을 맞은 뒤에도 뒤끝 없이 잠시 있다가

“ 배고파요. 밥 먹어요. ” 하면서 서툴지만 애써 화해를 시도하는 아이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까칠하고 예민하고, 나 잘난 맛에 살고, 속좁고, 아둔한 나를 아이들이  거름이 되고, 열매가 되어 자라게 해 주었다.


아이들 덕에 억울함을 참는 법 ,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것,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사랑이라는 것 등을 배웠다.  바쁜 삶보다 누리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고, 매일 변함없이  건강하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위대함을 배웠다.  


부모님의 사랑을 절실히 깨닫고, 타인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하며 ,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인생의 가장 귀중한 경험과 교훈을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배웠고 지금도 날마다 배우고 있다.


부족한 엄마를 성장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세 명이나 되는 스승들을 보내주셨나 보다.


엄마를 자라게 하느라 너희들이 고생 많구나.

너희가 아니면 몰랐을 세상의 빛나는 보화들.


나를 성장시키느라 고생한 아이들.  

미안하고 고맙다.


나의 작은 스승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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