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스토리다
이번 수업은 스토리텔링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글이건 스토리텔링 요소를 넣으라고 하셨다. 단 세부성과 정확성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만들어야 한다.
스토리에서 교훈이 감춰져 있더라도 작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작가는 telling(설명)과 showing(묘사)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찾아본다. 내가 이야기할 거리를 발견해서 파고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취재도 많이 하라고 하셨다.
이번 주 과제는 '내 감정과 다르게 행동한 경험'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나는 감정과 다르게 행동한 적이 별로 없었다.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어서 감정을 숨기는 데에 서툴다. 그래서 주로 사회생활에서 가면을 쓰고 다르게 행동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재미있고, 톡 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둘째 아들 호와 여자 친구와의 일을 엄마 입장에서 쓰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야 생각하게 되었다.
아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어떻게 보였을까?
나는 아들의 기분을 고려해서 여자친구에 대한 호의적인 말과 표정을 전하려 애써왔다. 막상 글로 풀어내니 호 입장에서는 엄마의 불만이 나름 느껴질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 호 입장 번갈아 가며 우리가 했던 말들과 행동을 재생하면서 나는 난생처음 호의 마음을 깊숙이 들어다 보게 되었다. 더불어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여겼던 호가 눈치 보느라 조심스레 행동했던 말과 행동들이 하나하나 재현되면서 미안해졌다.
배운 걸 활용하느라 스토리텔링으로 써서 결론은 아이러니 기법을 활용해 반전을 배치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 시간에 읽어보니 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 쓸 때는 신나서 썼건만, 사람들에게 글이 전달되는 건 또 다른 차원이었다. 혼자 골방에서 글을 쓴 이후에는 반드시 문을 열고 보여주라 했던 스티븐 킹의 말이 실감 났다.
수업 후 선생님, 동기들과 모여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실 보다 식사 자리에서 더 유용한 팁을 얻어가곤 했다.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분위기와 느낌이 전달되는 듯했다. 그 사람과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들의 글들을 읽은 후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누구는 운동을 좋아하고, 누구는 자기 얘기를 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누구는 자매끼리 애증이 심하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혼재되었다.
처음에 나도 나의 얘기를 솔직히 글 속에 담는 것에 쭈삣거렸다. 낯선 사람들이 듣는 앞에서 내 얘기를 솔직하게 공개할 자신이 없어 글을 쓸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가장 솔직한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을 살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힘입어 마음속 얘기들을 조심스레 들추기 시작했다. 문득 함께 식사를 하면서 궁금해졌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내 글을 통해 내가 어떻게 각인될까.
나는 글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주했다.
내 글이 나의 생각과 모습을 온전히 담지 못하듯이 타인의 글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편견과 선입견은 버리고, 타인의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내 주관과 생각으로 글 속에 보이는 타인의 모습을 재단하지 말자. 중요한 건 누구의 글이나 그만의 향기를 담은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나 시 쓰기 수업이면 어땠을까.
자신과 일상을 드러내는 글, 에세이 수업이기에 우리는 글을 통해 각자의 삶을 드러내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의 글은 어느새 각자의 스토리텔링을 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나만의 스토리.
결국 삶은 각자의 스토리니까.
우리는 날마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