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받는 느낌
이번 글쓰기 수업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아빠와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그 약속의 날이 떠올랐다.
2년여간 자리에 누워 투병하셨던 아빠를 돌보러 갔던 날, 생애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며 다리의 장애로 인해 작가의 꿈을 접으셨던 아빠의 얘기를 들려 주셨다. 나는 그때 아빠를 위해 내가 대신 작가가 되겠노라 호탕하게 약속했건만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공모전에 연이어 떨어지면서 아빠의 죽음 이후에는 포기를 떠올렸었다.
그 경험을 글로 쓰기 위해 한 주 동안 아빠의 목소리와 체취를 소환했다.영화관의 영사기를 돌리듯, 우리가 함께 했던 그날로 돌아가 아련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퍼즐처럼 글로 맞춰 나갔다.
아빠 목소리와 표정, 우리를 둘러쌌던 약냄새 가득한
방 안의 공기가 나의 몸을 휘감았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이루지 못한 평생의 꿈에 대한 회한을 고백한 아빠의 모습을 영혼으로나마 다시 마주했다.
마침내 글쓰기를 마치고 늦은 밤 자리에 누웠는데 잠을 한숨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은 듯한 미진함에 밤새 뒤척이다 새벽의 미명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그날 아빠가 내게 해주셨던 말씀의 진짜 의미를. 당신의 속마음이 내 마음속에 문장들로 엮여 파도처럼 밀려왔다.
넌 아빠처럼 후회를 남기지 말렴. 아빠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면 지금 네가 겪는 삶의 거친 파도와 문제들이 언젠가 소멸되고 네 마음이 치유됨을 알게 될 것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가가 되려 분투하는 과정 그 자체가 네가 삶을 끝까지 사랑하고 살아내는 위대한 과정임을 기억해라.
나는 마침내 글쓰기 과제의 마지막 문장을 완성했다. 그제야 가슴을 돌덩이처럼 억눌렀던 응어리에서 해방되었다. 합평에서 글을 발표할 때 목이 메어, 아빠가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며 읽어 나갔다. 마침내 글을 다 낭독한 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재능이 없다는 남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 없어요. 그냥 쓰면 되는 거야. 남들의 말이 뭐가 중요해. 내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럼 결국 써야만 하는 거야. 동행 씨. 그냥 쓰세요. 반드시 꿈을 이루는 날이 올 거예요."
누군가에게 받는 진정 어린 격려가 포근해서 온몸에 온기가 밀려왔다. 가족들도, 주변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꾸역꾸역 도전했던 여정이 진짜 작가 앞에서 인정받아 가슴이 촉촉해졌다.
선생님이 내 얘기에서 연상된다고 추천해 주신 프랑스 작가 로맹가리의 '새벽의 약속'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의 유일한 가족,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했던 작가의 유년시절부터 이십 대까지의 기록을 따라가며 나도 그처럼 약속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려 작가가 되기 위한 공모전에 도전했으나 연이어 고배를 마셨었다. 재능부족과 일상의 한계를 탓하며 주저 앉았을 때, 늦은 나이에 웬 도전이냐, 뜬구름 잡지 말라, 지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 등의 무수한 말의 화살들을 맞으며 포기와 도전 사이의 간극을 헤맸다.
막내아들의 성화로 마지막 시도라고 여기고 신청한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의 격려로 다시 쓸 용기를 얻었다.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계속 나가라는 격려를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선생님의 입을 통해 말씀해 주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을 선생님으로부터 받아 읽기 시작했다. 책에 나오는 안내를 따라 나의 이야기를 일단 써보기로 했다.
내 어머니의 의지와 생명력과 용기가 계속 내게 흘러와, 나를 먹여 주었던 것이다.
-로맹가리 '새벽의 약속' 중-
로맹 가리의 고백처럼 아빠의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열망과 용기가 수업을 통해 격려의 말로 내게 흘러왔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도록 나를 먹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