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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용기

글을 나누는 시간, 삶을 나누는 시간

by 그대로 동행

글쓰기 수업 때 제출할 과제를 위해 한 주가 글쓰기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정이었다. 수업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강의를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매주 과제물을 해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다.


아이들과 수업 후 화요일 밤늦게 간신히 초고를 쓴 뒤, 수요일 날 퇴고, 목요일 제출하는 일과가 반복됐다.

과제 제출 전에 개인적인 약속을 잡거나 병원 가는 일정도 차츰 부담스러워졌다. 내 생애 이렇게 치열하게 글쓰기에 집중한 적이 있던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번 수업 과제는 ' 어릴 때 역경이나 장애를 극복한 경험'을 쓰는 거였는데 지난주에 이어 또 난감해졌다.

린 시절에 역경이나 장애를 극복한 경험이 거의 없음을 글을 쓰기 직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은 비교적 평탄한 세월을 보냈다. 부모님 속 썩이지 않고, 하라는 공부 열심히 하면서, 동네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무난하게 학교에 진학하고.....

집안 사업이 망해서 좁아터진 집이나 반지하로 이사 갔고, 친구들과의 사소한 오해와 다툼으로 냉가슴을 앓았던 적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마땅히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역경을 극복한 사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남편이 그런 나를 보고 대학시절 토익 점수가

학과 최하위로 나와서 영어 배우느라 연수 가고 고생했던 얘기를 쓰라고 제안했다. 역경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했지만 그거라도 써야겠다 싶어서 끙끙대며 자판을 두들겼다.


역시 글을 쓰면서도 민망했는데 선생님도 혹독한 평가를 내리셨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어 글이 느슨하네. 글에 자신만의 개성을 담으세요. 개성은 구체성에서 나오는 거예요."

내 이야기를 담을 때는 구체적인 일화를 담아야 설득력이 있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각자의 역경을 극복한 사례를 맛깔나게 풀어냈다. 두 번째 글이어서인지 각자의 삶을 진솔하게 녹여낸 노력이 느껴졌다.

생경한 타인으로 마주했던 학우들이 각자 써온 글을 발표하면서 이전보다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각자 쓴 글을 나누는 시간은 단순히 글만 나누는 시간이 아님을.

글을 나눈다는 건 결국 삶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리고 삶을 나누는 글의 전제는 진솔함과 구체성이다.

그런 글에서 쓰는 이의 고유한 개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것에 주춤했었다.

전혀 안면 없는 낯선 타인들 앞에서 나를 솔직히, 구체적으로 노출해도 될지 망설였었다.


그러나 두 번째 합평 중 사람들의 솔직하고 내밀한 얘기에 귀 기울이면서 깨달았다.

지금 나누는 각자의 이야기들은 수업을 끝내고 헤어지는 순간 휘발될 것임을. 그러니 여기에서는 민낯을 드러낸다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쓰자.


선생님은 쓰는 사람이 솔직할 때, 읽는 사람도 친근감을 갖게 된다고 하셨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이웃집 언니나 아줌마의 얘기처럼 친근하고 즐겁게 받아들여 주는 상상을 하며 쓰기로 했다.

선생님이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를 추천해 주셨다.


회고록이란, 삶이라는 원료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 경험을 구체화하고, 사건을 변형하고, 지혜를 전달하는 자아라는 개념에 의해 통제되는 일관된 서사적 산문이다. -비비언고닉 '상황과 이야기'중-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구체적인 상황에 더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나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글쓰기의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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