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의 설레임
수업 전날, 집안에 예기치 않은 큰일이 생겼다. 슬픔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수업을 못 받겠다 싶어서 한겨레 문화센터에 수강취소를 요청했다.
수업 첫날이어서 취소가 안된다는 말에 침대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런 나를 남편이 억지로 흔들어 깨워 차에 태웠다. 차가 막히는 토요일 오전 2시간여를 달려 강의실에 도착했다.
마침내 시작된 내 생애 첫 글쓰기 수업.
강의실 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이들 키우고, 일하고, 딸, 아내,엄마, 며느리 역할을 하느라 나를 위한 시간과 기회는 늘 뒷전이었다.
오랜만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수업을 듣게 된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나는 비루한 옷차림으로 온갖 의무에 시달렸다가 화려한 드레스에 호박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도착한 신데렐라로 변신한 것만 같았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정면을 진지하게 주시하면서 수업에 집중했다. 언뜻 보기에도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숨 죽이고 선생님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선생님은 수십 년의 내공을 풍기며 당당하고 열정적인 강의로 우리를 압도하셨다.
1년 전 돌아가신 아빠가 살아계실 때 당신이 가장 후회하셨던 그 꿈을 이뤄 드리겠다고 약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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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습작책을 독파하며 글쓰기에 매진했지만 매번 등단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결국 아빠는 딸이 약속을 지키는 걸 못 보고 돌아가셨다. 아빠의 죽음 이후 추모의 글들을 쓴 이후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지냈다. 작가가 되는 문턱에서 냉대와 거절을 당한 상처로 이제 도전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를 지켜보던 고1 막내아들이 틈날 때마다 나를 독려했다.
"엄마, 왜 요즘은 글 안 쓰세요? 나 엄마 글 보고 싶어 기다리는데..."
"엄마, 작가 된다고 할아버지와 약속했잖아요. 엄마가 되면 나도 따라갈 건데..."
매번 엄마를 향해 맑은 눈으로 말을 건네는 아들의 모습을 보기 민망해 별러 왔던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이제 아이들 입시도 끝나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의 도전에 무심했던 남편도 이번에는 잘 배워보라 격려해 줬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보내주는 훈훈한 사랑과 격려에 힘입어 받은 첫 수업.
오늘은 문장과 문단에 대해 배웠다. 선생님은 간결한 단문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다.
'가급적 단문, 능동태, 긍정표현을 써라.
명사화는 글의 힘을 떨어 뜨리므로 가급적 쓰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내 글의 문제점들이 나열되어 속으로 뜨끔했다.
예시로 전해 주신 피천득, 김훈작가의 수필들이 새롭게 읽혀졌다.
글쓰기 수업은 단순히 글 쓰는 법 뿐 아니라 글을 제대로 읽는 법도 가르치는 것임을 깨달았다.
다음 주부터 글쓰기 과제를 해와서 합평을 하기로 했다. 낯선 사람들과 모여 각자의 글을 나누고 합평하는 기분은 어떨까.
새로운 선생님, 쓰기의 언어들 그리고 함께 배우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첫 만남의 설렘으로 가슴이 촉촉해졌다.
나의 첫 글쓰기 수업,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