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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l 20. 2024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약속

아빠와 나의 꿈

평생 소아마비로 인해  목발을 짚고 사셨던 아빠는  그로 인해  양 어깨 관절과 인대가 다 마모되고, 척추측만증도 있어 일생동안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며 사셨다.     

 

3년 전 추석 명절 때는 화장실에서 넘어지시는 바람에 골반뼈 골절로 입원을 하셨다.  병원 침대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시며 한숨만 내뱉었던 아빠. 결국 아빠는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회복되어 병원문을 나서셨지만 진짜 어려움은 그 이후에 닥쳤다.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신다.     


 이후 아빠의 육체는 불꽃이 사그라들 듯이 단계적으로 쇠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걷지를 못하셨고, 다음에는 더 이상 자리에 앉지를 못하셨다.


결국 누워계시며 식사할 때만 몸을 일으켜 엎드린 채로 식사를 하시다가 종국에는 엎드리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수저를 드는 것도 힘들어져서 식사를 떠먹여 드려야만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2년여에 걸쳐 일어났다.     


그 2년여간 오전에는 요양보호사님이 3시간씩 오셨고 나머지 시간에는 엄마가 돌보셨다. 우리 세 딸은 아빠를 돌보기 위해 매주 번갈아 가면서 방문했다.      


하루는 내가 아빠를 방문한 날, 자리에 누운 아빠가 꿈을 꾸듯 천장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인경아, 원래 아빠 꿈이 뭐였는지 아니?”

난데없는 질문에 소처럼 눈만 깜빡이는 딸을 향해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빠, 원래 꿈은 작가였어. 그런데 학창 시절 맨날 방에 처박혀서 글만 쓴다고 네 할아버지가 아빠 책들을 다 집어다 마당에 놓고 태웠었단다. 그때 불이 얼마나 컸는지 소방차가 출동할 정도였다니까.


그때 할아버지 붙들고 사정했어.

나 작가 안 되겠다고ᆢ그러니 책은 그만 태워달라고. ”    


“아빠, 작가 되는 게 어때서? 왜 할아버지는 아빠 책을 다 태우셨대?”

“몸이 불편한 내가 방에 처박혀 책 보고 글만 쓰면 가뜩이나 안 좋은 몸이 더 안 좋아진다고 못하게 하신거야.”     

장애로 인해 꿈을 포기했던 아빠의 회한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이해되었다. 초등학생 어린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아빠가 왜 그리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는지, 당신의 칼럼이 신문에 실린 얘기, 라디오에 아빠의 사연이 방송돼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와 기적적으로 연락이 닿았던 얘기들을 하시며 눈을 빛내던 아빠의 모습들이.

          

평생 당신이 원했던 꿈을 포기한 채 살았던 아빠를 향한  안쓰러움과  우리를 위한 희생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아빠, 내가 아빠 꿈 대신 이뤄드릴게요. 내가 작가 되면 되잖아요.”

그때 통증으로 늘 고통스러워했던 아빠의 표정이 갑자기 햇살이 비추듯  환히 밝아지는 것을 봤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아빠를 위해 작가가 될 준비에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독서논술을 가르치는 경험을 살려 매일 글을 쓰며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꼭 등단해서 아빠에게 자랑스럽게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마침 아빠가 즐겨보시던 00문학 공모전을  보고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빠, 00문학 공모전에 지원하려고 해요. 아빠도 00문학 아시지요?”

아빠는 화사한 미소를 띠며 “그럼, 내가 거기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빠 젊을 때 그거 수년간 구독했잖아. 네가 거기 응모한다니.... 잘해봐라.”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반드시 아빠의 맏딸이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었다. 그것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아빠가 가장 좋아하시던 그 문예지로 등단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빠의 수십년 묵은 아쉬움의 한을   통쾌하고 시원하게 풀어 드리고 싶었다.  아빠 삶의 끝자락에서라도 그  벅찬 기쁨을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아들을 뒷바라지하면서 독서논술 수업도 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글을 쓴다는 건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봐도 함량 미달인 나의 글을 보며, 나는 아빠만큼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학창 시절 백일장에서는 곧잘 상을 탔지만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실력은 한참 녹슬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매일 머리를 싸매며 글을 쓴 뒤 고치고 또 고치고, 토가 나오도록 고쳐서 마침내 응모 작품을 보냈다.     


매일 손으로 꼽으며 당선소식을 기다렸건만 결과는 ......낙선.

 어찌 보면 낙선이 당연한 일이지만 차마 아빠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한참을 얘기할지 말지 망설였다. 결국 아빠를 찾아갔던 날, 공모전에서 떨어졌다고 말했을 때의 아빠 표정이란.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씩 웃으며 “괜찮아. 처음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말씀하셔서 부끄러움과 자괴감으로 얼굴이 붉어진 딸을 위로해 주셨다.    

 

그 이후 연달이 아들이 아프고, 남편의 회사가 어려워지고, 아빠를 돌보러 다니느라 경황이 없어  더 이상 공모전에 응모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 아빠의 건강은 서서히 악화되었고 마침내 최후 임종의 순간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아빠가 마지막 숨을 가누시며 헐떡일 때, 온 가족이 모여 작별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빠에게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빠, 죄송해요. 아빠를 위해 꼭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 꿈 아빠 생전에 못 이뤄드려 죄송해요.”

울먹이는 내 앞에서 이미 목소리를 상실해 말을 할 수 없게 된 아빠가 지그시 미소를 지으시며  입만 뻥긋거리셨다.

‘괜  .’     


단박에 아빠의 말씀을 이해한 나는 그대로 보내 드리면  두고두고 후회할까 봐  다시 당신의 귀에 대고 약속했다.


“아빠, 이 지상에서 그 꿈 못 이뤄드렸지만 나중에라도 꼭 이뤄서 아빠 산소에 소식 전할게요. 꼭이요. 그럼 천국에서 함께 기뻐해 주실거지요?”

딸의 약속에 아빠 눈가에서  또르르 눈물방울이 양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더 이상 아빠는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의 무게를 일상 곳곳에서  절절이 느낀다.   그 절절함이 나에게 글을 쓰도록 독려한다.


쓰면서 나는 느낀다.

아빠가 ‘우리 딸 잘 가고 있구나.’라고 속삭이며 나를 인자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계심을.        

아빠의 꿈이 딸의 꿈이 된 이유이다.


한 사람에게 작가의 소망이 형성될 즈음, 무엇을 읽었느냐보다 어디에 누군가와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은유 ‘쓰기의 말들 ’ 중   

그날, 아빠와 함께였기에 작가의 꿈을 품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정은 약속을 지키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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