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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l 27. 2024

사진이 없다

그래서 쓴다.

대학에 입학하느라 친정집에서 지내는 큰아들이 가끔 나에게 단단히 효도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애가 친정에 사는 덕에 아빠가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엄마가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가  손주가  자기 비하하는  말을 꺼낼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으니 곧 "네 할아버지는 다리를 못쓰는 장애를 안고도 누구도 원망 안 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사셨는데... 너는 허구한 날 그렇게 불평이 많니? 네 엄마와 이모들 봐라. 저들 아빠가 장애라고 부끄러워한 적이 있나?"이다.


엄마의 이 일장연설은 꼭 "네 엄마 대학 졸업식 때도 교회 친구들이며 동창들 그렇게 많이 왔는데 엄마가 우리 아빠라고, 인사하라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아니?"로 마무리되곤 했다.


아빠는 당신이 목발 짚고 다니는 모습으로 인해 딸들에게 행여 누를 끼칠까 봐 우리들의 입학식은 물론 졸업식등의 중요한 행사에도  일절 오지 않으셨다.


 결혼식 날도 하객들의 시선을 고려해 신부 입장 때 세 딸들을 모두 사촌오빠의 손에 맡기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야 나는 우리들의 인생 중요한 순간을 기념한 사진들 어디에도 아빠 모습이  없음을 깨닫고 가슴이 아렸다. 엄마가 손주에게 늘 말씀하시는 그 대학 졸업식도 당시에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 순간 중 하나였다.


맏딸이 졸업 전에 국내 굴지 기업에 취업하고 졸업을 하게 됐으니 당시 나의 졸업식은 집안의 경사였다. 엄마와 두 동생들이 아끼는 정장을 빼입고  참석한 건 물론이고 친한 여고동창들, 교회 남사친들까지 총출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도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들뜬 모습으로 졸업식에 갈 준비를 하셨다.


그렇게 학교 앞에 도착해서 마침 시작된 졸업식을 끝내자마자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정작 아빠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졸업한다는 기쁨에 취해서 사진 찍기에만 급급하느라 미처 몰랐는데 한참을 대학 동기들, 선후배들과 안부를 나누며 사진을 찍다가 정작 아빠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뒤늦게야 사진을 다 찍고 축하를 나눈 뒤 차로 돌아갔을 때, 아빠는 수시간 동안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아빠가 와주신 졸업식이었는데  난방도 틀지 않아 냉골인 차 안에서 기다리시다 꽃다발을 잔뜩 안고 돌아오는 딸과 친구들, 가족들을 맞으셨다.

그토록 고대하던 맏딸의 졸업식, 한 번쯤 차에서 내려 학사모를 쓰고 함께 사진을 찍을 법도 했건만,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어 딸에게 행여 피해라도 줄까 우려하는 마음에 내내 차 안에 머무르셨던 것이다.



그날  함께 갈비집에서 식사하며 리 중 누구도 아빠에게 왜 차에서 나와 같이 사진 찍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이후 나는 아빠에게  함께 나가서 사진 찍자는 말을 먼저 건네지 않았던 모든 순간들을  진저리 치도록  후회했다.

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어색하고 신기한 시선으로  구경하거나, 기피하거나, 때로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두려워 나도 피한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상조회사에서 아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사진들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때 앨범과 사진들을 정리하면서야 아빠의 사진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면에 내가 친정에서 아빠의 유품들을 정리할 때, 아빠는 딸의 청첩장, 첫 직장 월급 명세서, 내가  어학연수 때나 어버이날 보낸 편지들 등을 소중히 상자에 보관해 놓으신  것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아빠와 함께 찍은 변변한 사진조차 없는데 우리 아빠는 딸의 소중한 순간의 기념들을 이렇게 애지중지하셨구나.


아빠는 늘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뒤에 숨어 계셔도, 누가 볼까

차 안에서 홀로 몸을 웅크리고 계셔도, 우리가 다 희희낙락하며 사진 찍고 즐길 때 아빠는 그곳에서 그냥 기다리셔도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토록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아빠도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으셨을까.


몇 장 남지 않은 사진으로 만들어 준 동영상을 나는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다.


진이 없기에 글로 쓴다.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이 영영 이 지상에서 연기처럼 소멸될까 두려워 이렇게 기억과 애도의 마음을 붙들고 한 자 한 자 활자로  남긴다.


 글이  기억은 영원불멸의 존재로 박제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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