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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마침내 지키다

by 그대로 동행

아버지의 꿈은 작가였습니다. 소아마비로 평생 불편한 다리로 사셨던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글쓰기였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가 방안에 틀어박혀 글만 쓰면 몸이 더 상할까봐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책과 노트를 다 태울 정도로 그 꿈을 격렬하게 반대하셨습니다.


꿈이 좌절된 이후, 아버지는 월간문학을 창간호부터 구독하며 당신의 못 이룬 꿈에 대한 회한을 달랬습니다.


저는 평생 가장 후회되는 일로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와 약속했었습니다.

맏딸이 월간문학으로 등단해서 아버지의 꿈을 꼭 이뤄 드리겠다고.


브런치에도 그날의 약속을 글로 올리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 생의 마지막에 가장 큰 희열을 안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https://brunch.co.kr/@inkyung91/524

그러나 아버지는 딸을 통해 꿈이 이뤄지는 것을 못 보고 가셨습니다.


장례 이후에도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혼자 포기를 떠올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만해도 된다는, 뜬구름 그만 잡으라는 주변의 비아냥에 상심의 늪을 헤맸습니다.


막내아들의 격려에 힘입어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첫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이 '가슴에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써야 된다'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진심 어린 격려에 힘입어 다시 도전할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꿈이 이뤄진 순간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애독하시던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하게 된 것입니다.

합격 소식을 들은 날은 촉촉이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빗물인지 감격에 겨운 눈물인지 가슴과 얼굴이 흠뻑 젖었습니다. 기쁨에 겨워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설레는 한편 마음이 아리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아이처럼 기뻐하셨을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 딸 잘했다' 해주지 않으셨을까, 혼자 상상해 봤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딸에게 살아낼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 보내준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딸의 등단소식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함께 해준 엄마, 상기된 표정으로 격렬하게 기뻐하고 축하해 준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이제 엄마, 남편과 함께 아버지의 영전에 소식을 바치러 갈 예정입니다.


아버지와의 얘기로 선정됐으니 큰 빚을 졌습니다. 앞으로 우직하게 쓰는 삶을 살아냄으로써 그 빚을 갚아 나가려 합니다. 아버지가 지상에 남기고 간 못다 한 얘기와 문장들을 모아 맏딸인 제가 대신 써나가려 합니다.



책을 받아보고 제 글이 다른 수상작에 비해 많이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부족함 실력임에도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로 선정해 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 작가의 길은 쉽지 않다. 로봇 저널리즘 시대가 되었다. 학교 숙제는 AI 프로그램이 대신하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글도 AI가 써낸다. 인간은 더 독창적으로 글을 써야 하고 바닷속보다 더 깊은 심상의 세계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기회의 손을 덥석 잡고 작가의 길로 맹렬하게 뛰어들기를 바란다.'라고 심사평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 기회의 손을 덥석 잡고 맹렬하게 작가의 길로 뛰어들겠습니다.


생의 가닥가닥을 모아서 언어의 옷을 짓겠습니다. 고통도, 시련도, 피할 수 없던 운명도 결국은 아름답고 쓸만한 무늬로 직조될 것입니다.

그 옷들이 세상으로 나가 누군가의 삶에 닥친 추위와 더위로부터 연약한 몸을 감싸 보호해 주길 소망합니다.


내 삶의 비루함과 결핍도 문학의 관점에서는 눈부신 날개가 되고 장식이 된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요.


그러니 앞으로 우직하게 사람들의 영혼에 멋지게 입힐 옷을 지어 나가겠습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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