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이 하늘을 치솟던 때가 있었다. 아빠가 이래서 엄마가 이래서 내가 망한 것이라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며 말이다. 가부장적인 집안, 화병으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할머니와 공포스러운 집안 분위기, 그리고 조부모님을 모시며 살기에 당연히 따라오는 집안 내의 갈등(친지 간의 다툼, 돈 문제, 상속 문제)과 제사로 인한 금전 및 체력 문제등 따라오는 이슈들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교사셨던 아버지가 원한만큼의 성적과 공부량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마다 집안에 일었던 태풍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힘들게 했기에 수많은 죄책감이 수반되었다. 언젠가부터 내 삶이 잘 풀리지 않기 시작했고, 몸과 마음이 고장 나며 원망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삐져나왔다.
해결을 하고 싶어 심리학 책을 무진장 뒤졌다. 그러나 해결책을 위해 접근한 원인에 눈이 멀어 원인을 빨리 없애고 싶어졌다. 그러나 부모님을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스스로도 그리고 내 과거를 지울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답답함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집어삼켰고 결국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증기기관차가 되었다. 석탄을 꺼내던 어디에 들이박던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 멈출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미 모든 벌겋게 다 타들어가기 시작한 석탄은 다시 꺼낼 수도 없었다.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서고 멈춰 세워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인 중 몇몇에게도 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애초에 원망이라는 강한 에너지를 가득 품은 채 내달리고 있었기에 귀에 들어오는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절벽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방법 말고는 살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넌지시 그리고 다소 가볍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돌아오는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버릇없고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모님도 두 분 멀쩡히 살아서 뒷바라지 다해주셨고, 지금도 이혼하지 않으시고 가정을 지키위해노력하고 계시는데 이혼한 친구들도 있고, 빚으로 인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친구들도 널리고 널렸는데, 너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해. 너는 고생 좀 해야겠다. 가서 일도 더 하고 더 힘든 것들 도 맡아서 해봐야 정신 차리지.” 정신이 번쩍 든다는 느낌이 그런 느낌이었을까? 나를 강하게 잡아주는 그 말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이제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렇지만 이미 관성이 붙을 대로 붙어버린 탓에 기차는 탈선을 하고 모든 바퀴와 실어 나르던 짐은 나뒹굴고 깨져나갔다.
집에 와서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 효를 다해야 할까, 아니 도대체 효는 뭘까?’로 시작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부모는 내가 택한 것이 아니었고, 부모가 나를 낳았으면 가장 최선의 것들로 내가 힘들지 않게 키우는 게 맞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어느새 ‘그래 맞아.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내 뿌리를 사랑하지 않는 건데,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지?’라는 식으로 변하고 있었다.
물론 각자마다의 ‘효’라는 것에 개념도 다를 것이고, 경험도 다를 것이다. 내가 가진 이기적이고 철 모르는 이 개념을 깨부수어야 함을 인지했다. 자식의 숫자만큼 있을 이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자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뜨였다. 갓 눈을 뜬 아기는 표현법도 삶에 대한 스킬도 없었기에 그저 눈을 뜬 채 울며 불며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도 힘든 날 중 하루였다. 같이 산책을 하다 엄마가 “두림아, 너는 윤가지만 엄마의 피도 절반 흐르지? 엄마가 어디 김 씨인지 알아? 김해 김 씨, 김수로 왕이 가야를 세웠고, 김유신 장군이 신라를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 너는 그런 분들의 자손이야. 엄마는 힘들 때마다 그분들의 피가 흐르기에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아. 그러니 너도 이겨낼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아주 어린 시절엔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코웃음을 치고 넘겨버렸을 이야기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근래에 한 영상을 접한 것이 영향이 컸다. 어떤 어머니가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아이의 탄생에 대해 마치 신화처럼 지어서 자기 전 들려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축복받아 태어난 하늘이 허락한 존재.
부모님에게 내가 조건 없이 받은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제야 내가 받은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받지 못한 것들은 많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것들은 너무나 많았다. 존재자체가 아름다운 아이, 그것이 나였음을 발견하니 인생, 싸워볼 만하다는 생각과 함께 용기가 샘솟았다. 이것이 내게 힘이 되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 내 인생은 저주받았다고 여겼나 보다. 그러니 그에 대한 증거만 한도 끝도 없이 찾았던 것이겠지.
효라는 것은 내 뿌리를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분들이 힘들게 부지한 인생의 결실로 맺어낸 존재, 사랑하는 아이가 또 만들어낸 축복이 이어지고 이어진 것. 그러니 그저 감사하다는 말 이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귀한 마음. 엄마가 내게 해주시던 말이 그날은 그렇게 귓가에 울려 퍼져 내 마음에 깊이자리 잡았다.
“박가셨던 고조할머니는 참 지혜롭고 손재주도 좋은 분이셨어 그분께서 베를 짜서 집안을 일으키셨단다. 네 할머니도 정말 손재주가 뛰어나셨지 한번 보면 뭐든 다 만드셨어, 할아버지의 명석한 두뇌를 가지셨고 피아노 실력도 남다르시단다. 아빠가 영어에 대한 열정과 끈기 그리고 감정적 섬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엄마는 마치 나이팅게일의 환생과 같았다고 다들 입을 모았단다. 아이야. 너는 그런 분들의 아래에서 축복 안에서 태어났단다. 넌 그런 아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