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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1. 2024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어차피 난 혼자였지

아직 사회로 나오기 전, 올챙이 시절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극 중 오상식이 술에 취해 푸념을 하다 피식 웃는 장면, 너무 괴로움에 울분을 토해내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때는 저렇게 버티고 또 괴로워하면서도 성장하는 회사원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술이란 것은 저렇게 멋진 어른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 어른의 삶에 대한 로망마저 생겨버렸다.


로망과 반대되는 모습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었다. 어른들이 얼마나 큰 짐을 짊어지고 사는지 몰랐던 철없었던 그때, 어른들이 술에 잔뜩 취해 고성방가를 하는 그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송대관의 '해뜰날'이였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돌아온단다
쨍하고    돌아온단다


신나는 노래가 꼬여버린 혀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다 목젖에서 튀어나온 한숨이 절절히 섞여버린 노래는 어딘가 구슬펐다-어쨌든 그의 인생에 지금은 해가 뜨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변했지." 여고의 쉬는 시간은 콘서트 장을 방불케 했다. 매 쉬는 시간 노래를 틀어재꼈고, 빅뱅을 좋아하던 친구 덕에 쉬는 시간 잠을 청하던 내 귀를 때리던 '삐딱하게'라는 노래의 한 소절이었다. 이별로 인해 힘들어하는 주인공이 자신은 이제 삐딱하게 살 거라며 마치 사춘기 소년이 할법한 행동을 하며 상처를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 몸부림치는 모습 담은 노래였다. 가사를 들으며 투정 부리는 소년이 영원한 것은 없다고 그저 고래고래 외친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그냥 의연하게 살면 돼 될 것 같은데 너무 지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지질함이 대중에게 통한 데는 단순히 가수가 노래를 잘한다는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년이 지나며 점점 인간관계를 맺어가고 사회에 적응을 해가며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아버린 어느 날, 너덜너덜한 마음을 달래려 포차에 소주 한잔 그리고 가락국수 한 그릇의 맛을 알아버린 어느 날, 이 노래가 귓가를 스쳤다. 제 멋대로 내게 다가와 일말의 기대를 심어주고는 보란 듯이 뒤 돌아가버린 썸남, 같이 영원히 갈 것만 같았던 친구의 배신으로 인한 구설수.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점점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인생이 슬럼프를 견디기 힘겨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변치 않는 사랑, 우정, 열정이란 것도 없었다. 영원한 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들은 변하고 닳고 상처 주고 떠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나도 술에 취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짝다리를 짚은 채 하늘을 바라보다 '거지 같은 세상! 다 필요 없어!'를 외쳤다. 그것은 어린 소녀의 치기에 가까웠으며, 한편으로는 상처받는 영혼이 지옥에서 지르는 절규에 가까웠다.


영원한 것이 없을까?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노랫말을 내뱉던 그의 절규, 그 알맹이의 차가움을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줬으면, 불안한 내 인생에도 해 뜰 날이 왔으면, 그때까지 옆에서 붙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그 마음을. 오늘 퇴근 후, 책상에 앉아 소주 한잔에 진미채볶음을 넘기며 이렇게 또 푸념을 해본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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