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잘 모르는 이에게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는 종종 디즈니 영화 중 '엘리멘탈'의 주인공 엠버와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메리다 둘은 얘기하곤 한다. 장녀, 다혈질, 호기심,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나타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조부모님, 부모님 사 남매 총 여덟 식구가 사는 우리 집에서 나는 맏이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착한 언니도 누나도 아니었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법이라 생각하며 동생들 위에서 군림하려 들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고, 화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10년 전쯤, 하루는 누군가에게 무례한 말을 뱉은 날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자초지종을 물으셨고 나는 답했다. "그냥 욱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그만 물어보라고." 엄마는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조용히 입을 떼셨다. "화라는 건 말이야, 유리구슬 다루듯 그렇게 다뤄야 하는 거야."
그 당시, 화가 나는 걸 그대로 표현하거나 참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못했던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항이 아니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단언컨대 그때의 나는 털 없는 짐승과 같았다. 있는 데로 내 감정을 표현하고, 위협이 가해질 것 같으면 숨죽이고 마는 것이 꼭 산짐승과 같지 않나.
화라는 감정은 2차 감정이며 그 안에 여러 가지 감정이 있으니 그걸 알아내야 한다는 말은 심리학 서적에서 참 많이도 봤지만 여전히 그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결국 용광로 안의 돌덩이 마냥 뜨거워져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서적에서 말하는 그 근본 이유를 파 해치다 보면 그 중심엔 가정사가 덩그러니 놓이고야 말았다. 결국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것은 나와 가장 가까웠던 가족, 친구들이었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를 가족을 비롯한 타인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감정이 가라앉길 바라며 시작한 원인 찾기 프로젝트는 나와 주위로 불씨를 옮겨 붙였다.
나를 힘들게 한 악당은 분노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노여움을 쏟아내던 어느 날, 부모님이 그리고 친구가 한없는 무력감에 미안하다며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다.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지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며 해결 방법도 알지 못했기에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사면초가였던 것이다. 견고하게 옆에서 지켜 서서 괴롭힐 것 같았던 악당이 아파하는 모습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했다.
가장 사랑하기에 가장 옆에 붙어 나를 안고 있던 존재들이 아프다는 사실. 이들도 인간이며,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사실. 이걸 원한적이 없었다는 사실. 나도 이들에게 받은 것 이상으로 상처를 남겨버린 악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부정하고 싶지만 적나라한 사실로 인해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화를 유리구슬처럼 다룬다는 것,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소중한 관계를 조심히 대하는 것이란 사실을 배웠다. 나의 아픔이 너의 고통이 되기도 하고 너의 고통이 나의 비참함이 되어버리기도 하기에, 우리는 영원히 사랑해야만 하는 사이임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유리구슬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