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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5. 2023

또 오겠습니다.

  “어서오시오. 날이 덥제?”


  점심으로 한 숟갈 밥을 뜨다 말고 할머니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인사를 했어요. 빨간 앞치마는 해지고 낡아 끝부분이 말리고 하얗게 들뜬 부분이 보였다. 처음 샀을 때는 선명한 색이었을 앞치마에는 빛이 바래 형태와 색을 알 수 없는 꽃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요. 할머니의 손은 건조하고 끝이 구부려져 있었다. 두툼한 손은 손만 보면 남자의 손과 같아 보일 정도이지요.      

   

    “아이고. 저 때문에 식사하시다 말고...”

    “아니여. 거의 다 묵었어요. 하나 주믄 될까?”

    “네. 가정식 백반 하나 주세요.” 

    “그려. 얼른 앉아서 이 시원한 물 한 잔 드시고 계셔. 얼른 맛나게 준비해줄팅게.”     


  말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느린 몸짓으로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손님에게 주고는 주방으로 들어갔어요. 무릎이 불편한 지 뒤뚱뒤뚱 몸을 살짝씩 좌우로 움직이면서도 주방에서의 손놀림만큼은 빠르셨어요. 장사한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았지요. 빠른 손놀림만큼이나 할머니의 입은 쉬지 않으셨어요.      

  

   “여기 도서관 댕기는가?”

   “네.”

   “여기는 처음인갑네. 처음 보는 얼굴이여.”

   “네. 오다가다 보기는 했는데... 그동안 도시락을 싸 다녔어요.”

   “아이고. 도시락 귀찮을틴디... 대단허네. 

    매일 그라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당가아?”     

할머니는 손님을 쳐다보았어요. 짧은 머리에 단정한 스타일의 20대로 보이는 얼굴의 남자였지요.      

   “아니에요. 제가 싼 건 아니고, 저희 어머니가...”

   “아고~ 그랬당가! 어무니가 힘들었겄다. 앞으로 우리 집에서 밥 묵어요. 

    내가 맛나게 잘해줄게.”

   “네.”     


  할머니는 남자 손님과 말하는 사이 반찬이 준비되었는지 넓은 쟁반에 6가지의 반찬을 올려 손님이 앉은 테이블로 걸어갔어요. 여전히 느린 걸음이었지요. 남자 손님은 그냥 앉아서 반찬을 받는 것이 미안했는지 의자를 밀치고 일어서서 할머니의 손에 들린 쟁반을 얼른 받았어요. 가게라고 해봐야 그리 넓지 않아서 이동 거리가 많지 않지만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에게는 그 좁은 공간도 넓게 느껴지기 마련이지요.     

   

   “아이고 고맙네그랴. 내가 참 빠릿빠릿하고 건강하면 자신이 있었당께.

     근디...글씨...나이 앞에 장사 없드만.

     한 5년 전쯤인가 무릎 수술을 하고는 이렇게 빙신이 되어부렀어.

     그래서 내가 싸게싸게 음식을 내다주지 못허네.

     배가 고파서 온 손님한테 늘 미안허제.

     고맙네. 근디... 자네 이름은 뭣이랑가?”

    “아~~ 네. 저는 한승주입니다.”

    “아~ 승주. 나이는 어찌되고?”

    “지금 26입니다.”

    “아이고~~ 좋을 때네, 좋을 때!

     뭔 공부한당가?”


쟁반을 승주에게 건넨 할머니는 또다시 주방으로 들어갔어요. 제육볶음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백반집이지만 메뉴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메뉴판이 있어요. 제육볶음, 돌솥비빔밥, 비빔밥, 불고기, 고등어구이, 등등등 메뉴만 15가지는 될 거예요. 하지만 할머니 백반집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정식 백반을 시켜요. 가장 저렴하거든요. 다른 메뉴보다 2000~3000원은 저렴하거든요.      

   

    “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몇 년이나 했당가? 그거 엄청 힘들다고 그랬싸대.”

    “작년부터 했어요.”

    “꼭 합격하소. 어매 생각해서라도 붙어야제. 

     열심히 하소잉.”

    “네.”     


  승주는 대답을 하면서 반찬을 먹었어요. 지금 1시 30분이 넘어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배가 고플 만도 하지요. 고기 구워지는 냄새며 고추장 양념이 익어가는 냄새가 승주의 배고픔을 더욱 자극했어요. 침이 고이는 냄새였지요. 지지직 불에서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한참 나더니 할머니는 제육볶음을 누렇게 변색한 타원형의 플라스틱 접시에 듬뿍 올려 내왔어요. 깨가 솔솔솔 뿌려져 있는 제육볶음은 기름기가 줄줄줄 흐르며 맛깔스러워 보였지요. 승주는 제육볶음이 올려진 접시가 테이블에 내려놓기도 전에 젓가락을 가져다 고기 한 점을 듬뿍 떠서 먹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는 할머니는 웃었지요.     

   

    “미안하네. 디게 배가 고팝는갑구만.

     내가 행동이 이렇게 느리지만 않았어도 더 배 곯지는 않게 했을틴디...”

    “아니에요. 맛있어요.”     


볼이 터지도록 가득 제육볶음을 넣어서 승주의 발음은 분명하지 않았어요. 뭉개지는듯한 말이었으나 승주의 눈빛만큼은 정말 맛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할머니는 그런 승주의 앞 테이블에 앉아 벽에 붙어있는 TV를 바라보았어요. 간혹 승주의 쩝쩝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지요.     

    

    “입에 맞당가?”

    “네. 정말 맛있어요.”

    “군대는 갔다왔는갑구만.”

    “네. 재작년에 제대했습니다.”

    “장한 일 했네그랴. 

     어매는 나이가 어찌 된당가?”

    “44살이세요. 젊으시죠?”

    “하이고~ 어매도 애기네 그랴. 아를 빨리 낳구만잉.”

    “네...”     


   승주는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고개를 숙여 오물거렸어요. 승주는 음식을 꼭꼭 씹은 탓에 목이 메어서인지 물을 한 모음 마셨어요. 할머니는 그런 승주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TV에 시선을 두었지요.     

 

    “부끄러워할 일 없네. 뭐시가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이고 그란당가!”

     “......”

    “내가 안 봐도... 그 어매 참 대단한 사람일세. 

    그 어린 나이에 얼메나 시상이 무서웠을꼬. 

    근디도 이라고 멋지게 자네를 키우부렀으믄 그 어매..참 대단한 사람 맞네잉.

    그라니 부끄러워할 일 한 개도 없네.”     

고개를 숙이며 음식을 씹던 승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워메~~ 다 큰 총각이 이게 뭐시라고 운당가!

    배 안고파? 어여 먹어. 우는 시간도 아깝네.”     



  할머니는 그 자리에 앉아 손짓만으로 어서 먹으라는 시늉을 해 보였어요. 승주는 어린아이처럼 할머니의 말과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숟가락에 밥과 제육볶음을 얹어 크게 입에 넣었어요. 여전히 밥과 반찬들이 따뜻했지요. 말없이 밥을 다 먹은 승주는 조용히 일어나 할머니에게로 다가왔어요.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던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승주를 바라보았어요.     

  

    “얼마예요?”

   “주고 싶은데로 주고 가소. 나중에 줘도 되고.”

   “저기 메뉴판에 4000원이라고 적혀 있던데...”

   “그라믄 4000원 주소.”

   “여기 있어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힘이 나요.”

   “그라믄 되었네. 꼭 성공하소잉!”

   “네.”

   “또 오고잉!”

   “넵.”     


승주는 허리가 반으로 접힐 정도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어요. 인사를 받은 할머니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승주가 앉았던 테이블로 다가가 반찬을 정리하는 거예요.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또 오겠습니다.”     


할머니는 그릇 정리를 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오른쪽 손으로 어서 가라는 손짓만 할 뿐이었어요. 다시 도서관으로 향하는 승주의 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어요.      

   마을의 작고 정겹고 예쁜 도서관 옆에는 뚱뚱하지만 푸근한 할머니가 사장인 백반집이 있어요. 배고픈 배를 채우려 왔다가 마음까지 채워서 나가는 백반집이지요. 그래서 안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가본 사람 중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어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백반집을 찾게 되거든요.  승주가 앞으로 이 백반집의 단골이 될 예정이듯 이 곳을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은 또 오게 된답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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