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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5. 2023

도서관 옆 백반집

  오래된 거리임을 알려주는 작은 딱 봐도 좁은 왕복 2차로 골목이 있어요. 선은 2차로로 그려져 있으나 한쪽에 주차된 차들이 늘 기차놀이라도 하듯 서 주차되어 있으니 오는 차, 가는 차들이 눈치 게임을 하듯 움직이는 길이지요. 길 한쪽에는 오래된 2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줄을 지어 서 있답니다. 

  1층에 상가가 있고, 옆 계단을 이용해서 2층으로 올라가면 둥근 야외 테이블을 놓거나 화분들을 놓아 꾸밀 수 있는 야외 테라스가 있어요. 말이 좋아 테라스이지 말 그대로 옛날 집들인 것이지요. 

  거의 연식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낡아 보이는 집이 있어요. 1층에는 간판도 없는 가게가 있지요. 녹색 천막으로 약간의 그늘이 만들어지고, 가게의 유리창 앞에는 수국이며 고무나무, 돈나무, 국화 같은 여러 종류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 화분이 늘어져 있습니다. 가게 유리로 된 벽에는 “백반집”이란 문구가 적혀 있고, 몇 가지의 음식 사진이 있는 선팅이 되어 있지요. 그것도 빛바래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로 낡아 보입니다.

  사람들은 간판도 없는, 오직 유리창 문에 적힌 “백반집”이란 문구를 보고 “도서관 옆 백반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그 백반집 바로 옆, 그러니까 좁은 왕복 2차로의 도로 맞은편에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지요. 3층 높이의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 담벼락 안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습니다. 옛날에 만들어진 도서관이어서 주차장이라고 고작 차 5~6대 댈 수 있는 곳이랍니다. 

    1층에는 넓은 로비와 어린이 도서관이, 2층에는 성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3층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도서관이었는데, 몇 해전 도서관 한쪽에 3 사람 정도 탈 수 있는 조그마한 엘리베이터 한 대를 설치했습니다. 겉은 오래되었지만 안은 관리를 잘 한 덕분에 시설이 아주 깨끗해요. 화장실의 시설물들은 낡았지만 늘 기분 좋은 향기가 나고 조용한 음악도 흐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도서관을 좋아한답니다.

    도서관 밖은 오래된 세월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담벼락을 선 긋기 하듯 연식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무성하고, 그 앞으로 펼쳐진 잔디밭은 빽빽해서 갈색의 흙 한 톨 보이지 않아요. 곳곳에는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벤치가 있고, 도서관 운동장 한쪽에는 등나무가 만든 그늘이 있지요. 그 아래에도 벤치가 2개가 있어서 간혹 사람들은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가을이면 잠자리가 날아다니다 잔디밭 군데군데에 심어진 단풍나무 나뭇가지 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여름이면 담벼락을 두른 나무 위의 메미들이 힘차게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아마 메미들은 그 무성한 나무의 그늘을 다 차지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가을의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도서관 운동장의 초록 잔디밭이 하도 예뻐 여름의 그늘의 고마움을 잊을 정도이지요. 겨울이면 푸른 잔디밭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도서관 안에서 보는 하얀 잔디밭은 말 그대로 하얀 눈밭이 되어요. 마을의 강아지들이 아침 산책을 했는지 가끔 강아지 발자국이 나 있기도 하지요. 봄이 되면 다시 푸릇푸릇해지고 종이꽃이 피는 도서관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도서관에서 신문을 읽지 않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도서관에 종종 들러 벤치에 앉았다 쉬어 갑니다. 특히나 노인들은 이 도서관을 노인정보다도 더욱 사랑하지요. 이 오래된 동네에서 나고 자라, 이제 늙은 노인이 된 사람들이 많아요. 이 동네를 떠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도서관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도서관만큼이나 백반집 역시 오래되었어요. 주인장 할머니의 나이가 80이 가까워 오고 있고, 여기에서 장사하신 지 40년이 되어간답니다. 주인장 할머니는 원래 전라도 사람이었어요.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살다가 땅 하나 없이 사는 가난한 살림이 지겨워 장사라도 해보자, 하고 도시로 나왔다고 해요. 그렇게 자리를 잡아 백반집을 한 세월이 40년 가까이 되는 것이지요. 아직도 전라도 사투리가 여전하지만 할머니는 이 거리를, 그리고 이 도서관을, 이 가게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한답니다. 

    40년 가깝게 이 가게에서 만난 사람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어린 꼬마부터 시작해서 다 늙어가는 노인네까지... 손맛 좋고, 저렴하니 도서관에 온 사람들은 꼭 이곳에 들러 식사 한 끼 정도는 하고 가지요. 어떨 때는 도서관에는 가지 않고 식사만 하고 가는 경우도 있답니다. 가게 내부와 외부 모두 그 사람들의 손 때, 그리고 흔적들이 묻어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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