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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6. 2023

'쓰겄다'

   4년 전 문태는 고등학교 자퇴를 한 상태였어요. 말이 좋아 자퇴이지 퇴학이나 마찬가지 상태였지요. 갈 곳이 없는 문태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삼색 슬리퍼에 운동복, 이것이 문태의 옷차림새였지요. 머리는 늘 까치집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었지요. 한 겨울에도 하얀 발을 다 드러내고 까만 패딩을 입고 도서관을 왔다 갔다 했지요. 

    열람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들 옆에 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사람들을 봤다가 다시 나왔다가를 하루에도 수십 번 했지요.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가는 것은 아니었어요. 한 번도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문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읽을 수 있었겠어요? 

    문태의 모습을 보고 도서관 사서 선생님,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문제아로 볼 정도로 눈빛이 어지럽고 사나웠어요. 반항기 있는 눈빛과 구부정하고 껄렁거리며 걷는 모습은 문태를 동네 불량배로 오해할만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고등학생인데 자퇴라니요. 물론 내신을 위해서 스스로 자퇴하는 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 문태의 모습은 그런 모범생, 혹은 자의적으로 자퇴한 적극적인 아이로 비치지는 않았어요. 문태가 불량배는 아니었지만 반불량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요. 학교에서 자퇴를 권유했던 것도 일진들 싸움에 문태가 잘못 끼면서 그렇게 된 것이었거든요. 

   갈 곳이 없어진 문태에게 언젠가부터 아침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는 것은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어요. 어딜 가나 키가 작고 왜소한 문태를 쳐다보는 눈빛은 냉소적인 눈빛이었지만 도서관에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거든요. 낮에는 공시생들과 동네 할아버지, 아줌마들 몇 명 빼고는 없기도 했지만, 그나마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도서관 밖 세상에서처럼 사람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기에 문태가 숨어 지내기에는 딱이었지요. 

  학교를 자퇴하고 나서 문태는 점점 입맛을 잃어갔어요. 점심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어요. 그리고 도시락을 싸가는 것도 나가서 사 먹는 것도 귀찮았어요. 초콜릿으로 대충 점심을 때워도 배는 고프지 않았거든요. 언제부터인지 문태는 2층 도서관 구석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엎드려 잤어요. 그렇게 한참을 자다 팔이 저리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일어나 화장실에 가거나 팔을 바꿔 엎드려 잤지요. 

   그러다 잠도 오지 않던 어느 날,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저절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게 되었지요. 어려운 지리책, 한국사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책들을 지나 문학책들, 컴퓨터 관련된 책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책들이 있었나, 생각하며 문태는 그저 놀랍기만 했어요. 문득 문태는     

 

     ‘내가 이제껏 읽었던 책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다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어렸을 때 엄마가 읽어줬던 몇 권의 그림책이 기억에 나기는 하지만 그 흔한 전래동화도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선녀와 나무꾼’, ‘흥부 놀부’, ‘심청전’ 등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들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이것도 엄마가 읽어줬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문태가 스스로 읽은 책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데... 책을 읽으면 좀 덜 심심하려나?’     

  

    문태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어요. 열람실에는 나이가 아빠보다도, 자신의 할머니보다도 더 많은 할아버지도 와서 책을 읽기도 하고,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도 책을 읽기도 해요. 그들은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이렇게 책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문태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지요.

    하지만 가장 만만해 보이는 얇은 책을 찾아 읽었는데도 영 읽히지가 않았어요. 문태는 책을 덮고는 그대로 1층으로 내려왔어요. 그리고 도서관 정원을 걷기 시작했어요. 그늘이 지는 곳은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었지요. 갈색빛을 보이는 잔디밭이 포근하게 보였어요. 눈을 안아줄 것 같았거든요. 맨발 사이사이로 살을 찢는듯한 강한 겨울바람이 불어왔어요.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콧김과 입김이 보였어요. 문태는 춥기는 하지만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도서관 정원을 한참 걷다 도서관 밖으로 나와 도보를 걷고 있었어요.     

  

      “아야~ 아가~~~. 안 춥냐? 맨발로 그라고 다니믄 동상 걸린다. 들어온나.”


  백반집 할머니는 창가를 보다 맨발로 걷고 있는 문태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었어요. 문태는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알고는 잠시 멈춰 서서 할머니를 바라보고는 그냥 말없이 걸어갔어요. 별신경을 다 쓴다,라고 생각을 한 채 말이지요. 점점 문태의 코끝이 차가워지고, 발이 시리고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대로 도서관에 다시 들어가면 되지만 이상하게 도서관으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어요. 

     문태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적뒤적했어요. 천 원짜리 두 장이 만져졌어요. 매일 아침 아빠가 2000원을 주거든요. 점심은 집에 와서 혼자서 차려 먹고 음료수 정도 마시라고 주는 돈이었어요. 문태는 호주머니 속 돈을 만지작만지작하면서 따뜻한 어묵 국물이나 마시자 싶어 도서관 옆 백반집으로 들어갔어요. 백반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묵국물의 하얀 연기와 냄새는 문태에게 어서 오라고 주문을 거는 것 같았거든요.      

  

     “아까 들어오라고 헐띠 들어오제, 안춥냐잉?”

     “추워요.”

     “너는 양말이 없냐잉? 워째 양말을 안신는다냐? 뭐 묵을라냐?”

     “어묵 1개 먹을게요.”

     “저기 아무데나 앉어라.”     


백반집 할머니는 둥근 큰 대접에 어묵 3개를 가져다주셨어요.     

  

     “저... 1개 주문했는데요...”

     “오늘은 추워서 그란지... 장사가 영 안된다. 저거 두믄 뭐하겄냐. 싸게 묵어버리는게 낫제. 니가 복이 많다.”

     “네. 감사합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묵 국물을 들어마시니 온몸이 녹는 것 같았어요. 어묵 맛은 또 어떻고요. 어묵이 이렇게 고소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맛이 있었어요. 꼬치 어묵을 잡고 물어뜯어 먹으면서 문태는 점점 눈이 동그래졌어요.     

 

     “맛은 있냐잉?”

     “네. 맛있어요.”

     “쓰겄다. 맛나게 묵을 줄 알믄...쓰겄다.”

     “예?”

     “너는 여 도서관에는 언제부터 다녔냐?”

     “얼마 전부터요.”

     “쓰겄다.”


  문태는 도무지 할머니의 ‘쓰겄다’라는 말이 뭘 말하는지 모르겠었어요. 문태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궁금하다고 할머니에게 물어볼 용기가 없었어요. 뭔가 나쁜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좋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를 쓰겠다는 건가? 내가 물건인가? 할머니 눈에도 내가 한갓 물건으로 보이는 건가?’


1개의 어묵을 다 먹고는 2개를 연속으로 먹으면서도 문태는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어요. 책 내용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이제는 사람 말도 이해를 못 한다고 생각하니 문태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아가, 니는 몇 살이나 묵었냐?”

     “저요? 18살이요...”

     “근디... 왜 이 시간에 도서관에 온다냐? 오늘 쉬는 날이냐?”

     “자퇴했어요.”

     “아~~ 혼자 공부할라고 자퇴했다냐? 대장부다.”

     “아니에요. 학교에서 퇴학시키려고 해서 그냥 자퇴했어요.”

     “쌈다툼 했냐?”

     “아뇨. 싸우지는 않았는데... 거기에 있었어요.”

     “그려....”     


할머니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 문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문태는 그런 할머니의 반응이 의아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편하게 느껴졌어요. 따뜻한 어묵 때문에 얼어붙은 몸이 녹아서일까요? 마음까지 사르르 녹는 느낌이 들었어요. 잔뜩 움츠려져 있던 마음, 그리고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 늘 긴장하고 있어 가슴이 쪼이듯 아프기도 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어깨가 펴지고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도 잘못했으니까 학교에서 퇴학시키려고 한 것 같아요.”

     “쌈박질 하는 애들 맞는 거 보고 가만히 있었으믄 잘못혔다. 을메나 아팠겄냐.”

      “......”

     “그래도 니는 쓰겄다. 반성하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쓰겄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쓰겄다,가 쓰겄다지 뭔 뜻이 따로 있다냐.”


문태는 괜히 물어봤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쓰겄다.’라는 말이 정겹게 들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 저 다 먹었는데 얼마예요?”

     “500원이다. 너는 복이 참 많은 애다. 이 할미가 딱 보믄 안다.

      공부해라잉~.”

     “저 공부 못해요. 책 봐도 뭔 말인지도 몰라요.”

     “아가... 매일 도서관 오니라. 그리고 그냥 앉아 있어. 그라고 매일 여기 와서 밥 묵어라. 알았제?”

     “아빠가 점심은 집에서 먹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음료수 사 먹을 돈밖에 안 줘요.”

     “그라믄 나한테 음료수 값을 주고 와서 밥 묵어라.”

     “봐서요.”

     “배곯고 다니지 말어. 배가 든든해야 꿈을 꾼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이여.”

      “......”     


할머니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을까요? 그 이후로 문태는 도서관 휴관일조차도 도서관 정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할 정도로 매일 도서관에 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읽히지 않았던 책들이 읽히기 시작하더니 공부를 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혼자서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정말 음료수값만 받고 밥을 주실까?’라는 호기심에 백반집을 가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는 맛이 있어서, 그리고 할머니와 말을 하고 싶어서 가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늘 문태에게 ‘쓰겄다’라는 말을 사용해 주셨지요. 어느새 문태는 그 ‘쓰겄다.’라는 말이      

 

      ‘그래. 너는 뭘 해도 하겠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     


로 들리기 시작했어요. 늘 자신을 믿어주는 것 같은 할머니의 말에 힘이 났어요. 그렇게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가게 된 게 할머니와의 헤어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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