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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7. 2023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

    언제 더웠냐 싶게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었어요. 도서관 주변의 가로수, 공원의 나무들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어요. 하늘은 어쩜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기만 할까요? 햇살은 곡식 익기에 딱 좋게 강렬해요. 파란 배경의 스케치북 위에 도서관도 그리고, 도서관 주변 작은 상가 건물들, 오래된 아파트를 그려놓은 것 같아요. 자연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네요. 길가의 코스모스며, 도서관 1층 입구 쪽의 국화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었어요.     

    열람실은 아침 6시부터 10시, 도서관은 9시부터 6시까지 운영하는 도서관이니 크게 무서울 것도 없는 곳이지요. 앞으로 점점 어둠이 길게 내려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겠지만, 도서관 주변에 내려앉은 어둠은 도서관을 더욱 안정감 있게, 따뜻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줬어요. 도서관의 하얀 불빛과 노란 불빛이 어우러져 안을 밝히니 밖에서 보기에는 그럴 수밖에요.


    수연은 열람실 C- 20번 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임용 고시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가장자리를 좋아해요. 하지만 수연은 이상하게 가장자리에서 8번째 자리인 C-20번 자리가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이 자리 옆으로 누가 잘 안질 않으니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양 옆으로 자리가 비어 있으니 수연의 마음에 들었어요.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으니 방해를 받는 것도 덜하니 조용한 성격의 수연에게 딱 맞는 자리이기도 하지요.  

   수연은 벌써 3년째 임용 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사범 대학에 갔을 때만 해도 쉽게 인생이 풀릴 것 같았어요. 부모님이 원하던 대학교의 사범 대학을 갔고, 이제 선생님이 되어 안정적으로 살면 부모님에게도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생 때 장학금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수연이었기 때문에 임용 고시쯤이야 쉽게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교만 때문이었을까요? 수연은 여전히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제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고, 부모님 뵙기도 민망해서 눈만 뜨면 도서관에 왔다가 9시 40분이 되면 도서관에서 나오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점심과 저녁은 늘 도서관 옆 백반집에서 해결하고 있어요. 늘 조용하게 들어가서 앉아 조용하게 먹고, 할머니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 수연이었지요.      

   

    여느 날과 같이 수연은 도서관 옆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지요. 식당의 가장 안쪽 2인 테이블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밥을 먹고 있었어요. 백반집 할머니는 느릿느릿한 행동으로 수연에게 밑반찬을 가져다주셨어요.

    

    “오늘도 밥 남길까? 그라믄 애초에 쪼매만 퍼주고.”

     “.....”


수연은 고개를 숙인 채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할머니의 말을 듣지 못했어요. 할머니는 식탁을 ‘탁탁’ 두 번 두드렸어요. 그제야 수연은 할머니를 올려다보고, 한쪽 이어폰을 뺐어요.     

   

    “네?”

    “어째... 오늘은 밥 남길랑가, 다 묵을틴가?”

    “아... 네.”

    “내가 본께... 항시 밥을 두어 숟갈 꼭 남기든만. 그라믄 애초부터 쪼매만 퍼줄라니까.”

    “네. 조금만 주세요.”

    “원래 입이 그라고 짧은가?”     


‘입이 짧다’는 할머니의 말이 신경에 거슬린 수연은 다시 이어폰을 끼었어요. 사실 수연은 골고루 잘 먹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남들은 대학 오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다고 했으나, 수연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지요. 20대 같지 않게 ‘밥심’으로 사는 아이였거든요. 배가 든든해야를 넘어서 배가 꽉 차도록 먹어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아이였으니 밥심으로 산다고 말할 때 수긍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런 수연이 지금 할머니에게서 ‘원래 입이 그라고 짧은가?’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수연은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는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어요. 물론 귀에 이어폰을 꽂은 건 음악을 들으려고 그런 게 아니긴 했어요. 혼자 밥 먹기 어색해서 하기 시작한 행동일 뿐이었지요. 

   조금 후 할머니는 수연에게 접시 가득 담은 잡채와 고등어구이, 시래기 된장국과 밥을 가져다주셨어요. 수연이가 다 좋아하는 음식들인데 수연은 그냥 쳐다만 보았어요. 그러다 밥공기 안의 밥은 다른 때와 같은 양의 밥이란 걸 눈치채게 되었지요.     

   

     “할머니, 저 밥 안덜어 주셨는데요.”

    “그랴? 이상허다. 덜었는디...”

    “조금 더 덜어 주세요. 조금 먹어도 돼요.”

    “알었네.”


할머니는 또 뒤뚱뒤뚱한 걸음으로 걸어와 수연의 밥공기에서 한 숟갈 덜어내셨어요. 수연은 고개를 숙인 채 밑반찬과 잡채, 고등어구이와 국, 그리고 밥을 먹었어요. 가을은 말도 살이 찌는 계절이라고 하는데, 수연은 입맛이 없어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요. 밥알이 마치 모래알 같이 거칠게 느껴졌어요. 기름기 좔좔 흐르는 잡채는 보기와는 다르게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어요. 고등어구이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지요.     

    

     “여봐, 학생.”     

언제 왔는지 할머니가 수연의 앞에 앉아 계셨어요. 수연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어요.    

   

     “어째, 통 입맛이 없당가? 왜 이라고 시원찮게 먹는당가?”

     “아... 네.”

    “이랄수록 한 숟갈 더 떠야한당께. 한 달 정도 남았는가?”

    “네?”     


수연은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할머니가 임용 고시 날짜를 꼭 알고 계시는 것 같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지요. 순간 수연은 ‘그래, 여기 도서관에는 나처럼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고, 그 사람들이 이 식당을 이용할 수도 있으니... 그래서 아시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지요.  

   

     “뭘 그라고 놀라요? 늙으믄 아무것도 모를 줄 알고?”

     “아뇨. 그냥 좀 놀래서요.”

     “나가...여기서만 밥집을 몇 년을 했다고! 초등 핵교요, 중핵교요?”

     “중등 준비하고 있어요.”

     “아이고~. 이쁜 선상 되겄구만.”

     “붙어야 말이지요.”     


수연은 자신 없는 듯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마저 작아졌어요. 꼭 볼륨을 일부러 작게 나오도록 돌린 마이크를 댄 것처럼요.      


     “그런데 제가 임용 준비하시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문득 수연은 자신이 할머니에게 임용 준비하는 학생이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았어요. 하지만 수연은 이 식당을 이용하면서 늘 이어폰을 끼고 한 마디의 말을 하지도 않은 채 밥만 먹고 갔었어요. 그리고 책을 가지고 온 적도 없고요. 그런데 할머니가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해졌어요.     

 

     “나가... 여기서 밥집만 몇 년째인줄 아는가? 40년 가까이했네. 나가 가방끈은 짧어도 장사하믄서 는 눈치끈은 참말로 기네.”

     “네.”     


수연에게서 임용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행동이나 냄새가 있나, 싶은 생각에 수연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이라고 밥을 안묵은디 어디 합격하겄는가? 밥을 든든하니 묵어야 대그빡도 팍팍 돌아가제. 이라고 새 모이맹큼이나 묵으면 대그빡에 기름칠도 못허겄네.”

     “....”     


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수연이 그렇게도 못 먹었나, 하고 생각해 보니 요즘 수연은 입맛도 없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냥 밥때가 되니까 습관적으로 내려와 밥을 사 먹는 것 같았어요.   


     “이미 자네 마음이 송장이네, 송장이여.”

    “네?”

    “우째 그란당가? 어깨도 요라고 쪼그라져서는.... 그라지말고 이 고등어 잡숴.”     


할머니는 두툼한 두 손으로 고등어살을 발라 수연의 밥공기 위에 올려주었어요.      


    “나... 손 깨끗허게 씻었응께 아무 걱정하지 말고 드소.”     


어느새 밥공기 안에는 밥 반, 고등어살이 반으로 가득 채워졌어요.      


    “티브이에서 그라대. 수험생들한테 이 고등어 솔찬히 좋다고. 머리를 좋게 한다는구만. 그 뭐시냐... 디에치 그 뭐시냐가 솔찬히 많다드만. 선상님이 될 사람이 그것도 모르지는 않겄지?”

    “네. 감사합니다.”

    “말허지 말고 어서 한술 더 떠 잡솨.”     


할머니는 여전히 고등어살에서 뼈를 바르며, 수연에게 먹으라는 시늉을 해 보였어요. 도저히 먹히지 않을 것 같던 밥이 할머니 말을 듣고 나니 먹히기 시작했어요. 수연은 숟가락 위에 하얀 쌀밥과 고등어살 두 점을 올렸어요. 그리고 입을 벌려 밥을 넣었지요.     


    “하이고야~ 뭔놈의 입이 그라고 작게 벌어진다냐. 제비 새끼도 그라고 입을 작게 안벌려. 입을 크게 벌려야 한 번이라도, 쪼꼬매라도 더 큰걸 받아묵제... 그라고 입을 크게 벌려야 가슴도 펴지제. 오메~ 이라고 묵어봐.”     

하며 할머니는 손수 시범을 보여주었어요. 작은 언덕만큼이나 밥을 올리고 그 위에 김치와 고등어살을 올려 크게 벌린 입으로 그것을 모두 넣으셨어요. 그리고는 우걱우걱 씹으며 드셨어요. 할머니의 먹는 모습을 보니 수연이도 입맛이 도는 것 같고, 웃음이 나왔어요.     


    “이라고 크게 입을 벌려서 묵어야제. 우째 그라고 작디작게 입을 벌려싸쓰까? 입을 크게 벌려야 뭐라도 들어가제. 자신감도 그 큰 입 통해 들어가고, 그래야 가슴팍도 넓찍하게 펴지고, 정신도 맑아지고 그라제.”

    “네.”

    “말로만 ‘예’ 하지 말고 입 크게 벌려서 이거 다 묵소잉.”     


수연은 할머니를 향해 싱긋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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