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야이~”
“네?”
닭볶음탕을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던 문태는 닭뼈를 입안에서 고르며 할머니의 말에 대답을 했어요.
“나는 니가 이라고 될지 알았다.”
“다 할머니 덕분이지요.”
“뭐시가 내 덕분이라냐~! 다 니가 고생혔지. 고생혔다. 느그 아부지도 그라고 너도 그라고... 참말로 고생혔다. 쓰겄다, 참말로.”
“하하하하”
문태는 할머니의 ‘쓰겠다’라는 말에 갑자기 큰 웃음을 터트렸어요. 눈가에서는 눈물이 고였어요.
“할머니... 그거 아세요?
저 도서관 그만 다니려고 맘먹었었는데, 할머니가 도서관 다니게 하고, 나 공부하게 한 거? 할머니 밥 먹으려고 도서관 다녔어요. 할머니 말대로 배가 든든하니까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맛있는 밥 해주는 할머니 보란 듯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제가 제일 먼저 도서관에 오기도 했어요. 5시 30분에 일어나서요.”
“아이고~ 고생혔다. 장허다, 참말로.”
“할머니~. 저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 하는 대학교에 합격하고는 할머니한테 소식 전하러 온 거 아세요? 그런데 가게 문이 닫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와야지, 하고 갔었는데.... 이제야 오게 되었어요. 죄송해요.”
“괜찮네, 괜찮네. 말만으로도 참말로 감사허네. 내가 뭐시라고 나한테까지 소식 전하러 온당가... 마음만으로도 참말로 감사허네. 잘혔네, 잘혔어. 쓰겄네, 참말로.”
할머니는 두 손으로 문태의 손을 잡고는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할머니의 가슴에서 이 여름 뜨거움보다 더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때였어요. 문태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는가 싶더니 하얀 봉투를 꺼냈어요.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할머니의 손목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잡고는 할머니의 손을 폈어요. 그리고 그 손 위에 흰 봉투를 올려드렸어요. 딱 봐도 두툼하고 묵직한 봉투였지요.
“와따, 이게 뭐라냐?”
당황한 할머니는 화들짝 놀란 듯 물었어요.
“할머니, 그동안 제 외상값이요.”
“와따, 이 자슥이 뭔 헛소리를 이라고 해싸분다냐?”
“할머니... 제 목숨 살리신 값이에요. 할머니 아니었으면 저 이미 이 세상 사람 아니에요.
할머니 제 목숨 살리신 거, 그때는 제가 돈이 없어서 외상 한 거였어요.”
“뭔 헛소리냐. 나가 언제 니 목숨을 살렸다냐잉.”
할머니는 처음 듣는 이 말에 적잖게 당황한 듯 문태의 눈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았어요.
“할머니, 모르셨지요? 저 고등학교 자퇴하고 친구도 잃고, 가족도 거의 절 포기해서, 사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어서 아빠 말에 못 이기는 척 도서관에 왔어요. 갈 데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깡패가 될 용기는 더 없었고요. 싸움에 말려들었다고 했는데, 그 싸움이 보통 싸움이 아니었거든요. 한 아이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맞았으니까요.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면서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제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다 제 잘못 이랬어요. 아빠도요. 용기를 내서 이혼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엄마는 절 거부했어요. 제 전화마저 받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요.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거든요. 가족도 친구도 날 이렇게 거부하는데... 이런 차가운 세상이면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죽을 용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도서관에서 잠만 잤어요. 자다자다 그것도 지겨워 사람들을 봤어요. 날 피하는 것만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읽고 있는 글자가 제 눈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지요. 그러다 할머니 백반집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할머니의 ‘쓰겄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은 날이지요. 할머니는 제 얘기에 피하지도 않으셨고, 놀래시지도 않으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쓰겄다’라는 말을 하셨지요. 그 말에 살고 싶어 졌어요. 사람으로서의 쓸모가 나에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할머니가 저 살리신 거예요. 그러니 제가 할머니께 외상을 지었지요. 밥뿐만이 아니에요. 전 항상 할머니께 마음의 빚이 있어요. 그러니 받아주세요.”
문태는 웃는 얼굴로 할머니를 쳐다보며 아주 침착하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고 보니 4년 전의 반항아 같았던 문태의 모습을 1도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지금의 문태의 모습을 보면 아나운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반듯한 이미지거든요.
“할머니, 할머니가 제 마음을 받아주셔야 편하게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요. 그러니 이건 저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할머니가 받아주셔야 해요.”
할머니는 형태도 없이 주르륵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두툼한 손으로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할머니도 그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태가 전하는 마음의 무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리고 사람답게, 사람 냄새나게 자란 문태에게 너무도 감사했어요.
“감사허네. 나가 뭔 한 일이 있겄는가 싶제만... 나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뭔가를 꼭 해냈을 사람이었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거... 어른이고 애고 참말로 어렵네. 그란디 그것을 그 어린 아가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는디... 그런 사람이믄 뭐라도 하제 뭘 못하겄는가! 나가 참말로 복이 많은 사람이네. 고맙네.”
문태는 할머니를 꼭 안아주었어요.
“그란디... 기왕시 이 돈 쓸라고 맘 묵었으면... 그 아 주고 가소. 그때 죽을맨큼 맞았다는 그 아... 그 친구한테 줘야하지 않겄는가? 물론 자네가 안 때렸어도, 친구들한테 맞고, 친구들 앞에서 맞았으믄 그 아는 얼매나 아팠겄는가? 가뜩이나 예민할 때인디... 그 아한테 이 돈을 주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맞겄네. 안그른가?”
문태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것이 용기네. 참말로 그것맹키로 대단한 용기가 어디에 있당가? 난 자네가 해낼 거라 생각허네.”
문태는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어요. 할머니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사실 그 친구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할머니는 문태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말을 이어하시니 문태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문태 역시 그 친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찾아가 사과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이... 마음을 다해 감사해하는 것, 그라고 미안한 마음이 생길 때...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것이대. 감사허믄 감사하다고, 미안허믄 미안하다고... 애기때부터 배우는 것을 나이 묵을수록 안혀, 사람들이. 그 말이 참말로 어려운 말이랑께. 그랑께 뭣모르는 애기때 시키는거 아녀. 그라고 그 두 말이 그라고 듣기가 좋대이~. ‘감사하다’, ‘미안하다’ 흔한 그 말이 나는 시상 좋드만. 어디 세상에 나 뿐이겄는가? 우짜믄... 그 친구도 그 말이 듣고 싶은 것일거네. 자네의 그 말에 그 친구가 또 살아갈 힘이 나지 않겄는가?”
할머니의 말에 문태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지요.
“네. 할머니, 제가 그렇게 해볼게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암만. 자네라믄 다 해내제. 그라고 고맙네. 이라고 눈부시게 젊디 젊은디...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하니 나맹키로 나이든 사람은 안심이 되네. 고맙네.”
매미도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요? 가게 밖에서 매미가 ‘맴맴맴맴’ 열심히 울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