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Oct 17. 2023

인생 참 기네.

코 앞만 보고 살지 마소.

   “묵고 죽은 귀신은 빛깔도 좋다고 하드만. 뱃속을 기름칠 잘 해두믄 머리팍으로 영양분이 들어가서 머리팍이 팍팍 돌아븐당게. 1년이 되았든, 2년이 되았든 그것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여. 건강하게 공부하다가 합격을 해야 그 담이 편하제. 이 시험 끝나고나서의 인생은 생각 안헌가?”

   “이번에는 합격이나 했으면 좋겠어요.”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어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가족들을 무슨 낯으로 봐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무엇보다 자신이 무능력한 백조로 사는 것이 싫었어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거든요. 괜히 친구들이 자신의 실패를 걱정하는 듯 통쾌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친구들도 안 만난 지 오래되었어요.      


    “합격해야제. 암만! 그란디... 너무 그것만 신경 쓰지 마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요. 저희 아빠엄마 보기에도 부끄럽기도 하고... 제 친구들 거의 다 일하는데 저만 못하고 이렇게 백수로 있는 것도 창피하기도 하고요. 할머니, 저 나름 대학교 때는 잘했었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더 공부 못했던 애들도 합격하고 그랬어요. 자존심이 상해요. 그래서 저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해요.”

    “그래. 합격하소. 꼭 합격해야지.”

    “전 한 번에 붙을 줄 알았거든요. 저희 학과 애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로 합격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수연은 투정을 부리는 손녀딸처럼 할머니에게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이 식당을 이용하면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백반집뿐만이 아니에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동안 수연은 어느 누구 하고도 이야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푸념하듯, 투정을 부리듯 하는 이야기이지만 말을 하는 동안 수연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와따! 솔찬히 열심히 공부했구먼. 대단허네. 똑똑했구만. 부모님도 기대가 많겄구만. 왜 안그러겄는가! 이라고 척척 혼자서 잘해내는 딸래미니, 기대도 많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랬겄네. ”

      “네. 표현은 하지 않으셔도 기대가 많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자꾸 떨어지니 요즘에는 친구분들도 잘 안 만나시는 것 같아요. 다 저 때문이지요 뭐.”     


수연은 그동안 참고 있었던 한숨을 몰아서 내쉬며 말을 했어요. 자연스럽게 젓가락이 테이블 위에 놓였어요.     


      “젓가락 놓지 마소잉. 그랄수록 낯 두껍게 많이 묵어. 뭐 죄인이랑가? 그라고 생각하지 마소. 지금은... 더 큰 사람 될라고 속이 익어가는 시기네. 나가 참말로 멜론을 좋아한단마시. 그것이 참 요상해. 겉은 그물 모냥으로 되어 있고 단단해. 그란디 속은 참말로 부드럽고, 물도 많고 달고 그래.  그란디 그 멜론이 애기 때부터 그런게 아니라네. 처음에는 겉이 매끈매끈 하다대. 근디 갸가 속이 커질수록, 겉을 찢어분당께. 지 몸을 찢는거제. 근데 그것이 그란다고 속이 다 터지는 것도 아니여. 딱 터지지 않을만큼만 찢어졌다가 다시 살을 채워. 그러면서 그라고 이쁜 무냥을 만든단만시. 그라믄서 더 커지는거여. 속이 꽉 차는것이고. 그걸 몇 번 안한 멜론은 작디 작겄제. 그란디 그 과정을 충분히 한 야는 충분히 커서 사람들이 좋아허제. 사람도 이같지 않겄는가? 그랑께 죄책감 느끼지 마소. 인생에서 3~5년 큰 차이 안나네. 을매나 좋은 선상이 될라고 이런 시기를 겪나하고 감사하믄 그만이네.”     


  수연은 고개를 푹 숙였어요. 테이블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없이 밥 한술을 떴어요.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볼 위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륵 떨어졌지요.      


    “사람이 살다보믄 그래. 당장 코 앞만 봐. 걸을 때도 멀찌감치 앞을 보고 걸으면 좋은데 꼭 땅만 보고 내 발만 보고 거제. 그런데 그러다 사람하고 부딪히고 그라네. 멀리 앞을 보고 걷는 사람이 땅만 보고 걷는 사람 피해가제. 인생 참 기네. 긴 인생, 길게 보소. 당장 현실만 보면서 낙담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마 모르면 몰라도 나랏일 하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네. 그랑께 지금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닝께 이 모습만 보고 낙담하지 마소. 이라고 열심히 하고 있는디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죄인마냥 미안해하지도 말어.”

    “할머니... 저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요?”


할머니는 수연의 등짝을 한 대 때렸어요.      


    “와따, 요넘의 가시나 보소. 시작도 하기 전에 떨어질 생각부터 하고 있다냐?”

    “문득 문득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돼요.”

    “워메~ 이 가시나... 쓰잘떼기 없는 소리 하고 있는 거 보소. 아야~. 니 생각이 너를 감옥으로 넣고 있다야. 뭐단시 일부러 감옥에 살라고 하냐잉. 안힘드냐? 그런 생각하고 있으믄 좀 나아지더냐잉? 왜 사람들이 겨울을 더 싫어하는지 아냐? ”

    “아니요.”

    “어두운께 그라제 뭐가 있겄냐? 어두우믄 암껏도 안봬. 암껏도 안보이는디 사람이 뭐를 하겄냐? 자는 수밖에 없제. 그란디 그때 촛불이라도 하나 있어봐라. 을매나 밝아 보이고, 따뜻하게 보인다고. 일어나서 뭐라도 하고잡제. 촛불을 켜라. 니 마음에 촛불 말이다. 된다고 생각하고, 너를 키운다고 생각혀라. 그것이 없고 안된다고 어둠만 가져오믄 어뜩케 일어날 수 있다냐.” 

     “네.”     


수연은 할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어요.     


     “대답만 하지 말고, 입을 크게 벌리고 밥부터 잘 먹어야 해. 알았제?”

     “네.”     


하며 수연은 할머니가 발라주신 고등어를 듬뿍 퍼서 먹었어요. 이제 수연은 파이팅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머니 말씀대로 수연의 마음은 그동안 어둠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서서히 입맛이 도는 것 같았어요. 다시 먹음직스럽게 먹을 수 있는 수연이가 될 것 같아 수연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어요.


                     

이전 07화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