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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8. 2023

애엄마 김희정

경력 단절이 경력만 단절된 게 아니더라고요.


   희정이는 42살, 아이 셋 엄마예요. 12살, 10살, 8살. 결혼하고부터는 아이를 낳고 육아와 살림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어요. 아이 셋을 데리고 마트라도 가면 사람들은 애국자니 뭐니 해가며 희정에게 ‘대단하다’라는 말을 해줘요. 대단하다.... 이 말을 들을 때면 희정은 가슴속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슬픈 느낌이 들어요. 4년 연애를 하고 지금의 남편이 너무도 좋아서 결혼을 했지요. 그리고 원하는 아이를 낳았어요. 그러면 희정의 사랑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나서부터는 희정이 생각하고 그리던 삶이 아니었어요. 

    육아는 현실이라고 왜 주변에서 얘기해주지 않았을까요? 독박육아는 중노동이란 것을 왜 듣지 못한 것일까요? 힘들지만 아이는 또 예쁘고, ‘엄마, 엄마’하며 따라와 주는 아이가 사랑스럽기는 하면서도 때로는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주저앉고 울고... 육아를 하다 보면 내가 없어지면서 미친년 널 뛰듯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누가 한 번이라도 얘기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게 둘째, 셋째까지 낳으며 아이들을 키워왔어요.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생활을 했지요.

    가족을 위해 참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을 했지만 결혼 13년 차의 자신을 보니, 그냥 ‘애엄마 김희정’만 남아있는 것을 보았어요. 남편과 얘기는 점점 막혀만 갔어요. 사회 정치 얘기는 전혀 모르겠고요, 경제 얘기에는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들이 과학, 수학에 대해 물어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잔뜩 긴장도 하게 되었지요. 자신이 하는 얘기는 반찬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 식사 메뉴 이야기, 학원 이야기가 전부였어요. 자꾸 바보 같아지는 자신을 보고 있으니 너무도 초라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제 셋째까지 학교 입학을 했으니 오전에만 이라도 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볼까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어요. 마음은 너무도 잘할 것 같은데 자신의 이력을 보고 뽑아주는 곳은 없더라고요.


    희정이 처음부터 이렇게 무능력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나름 서울에 있는 이름 내세울만한 대학을 나왔고요, 그리고 대기업에서 5년을 일한 경력도 있어요. 친정 친척들이 모이면 ‘희정이 공부 잘했었는데...’라는 말을 아직도 듣곤 해요. 처음에는 아이 학교만 입학시켜놓으면 그때 일해도 될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경력단절이란 게 직업 능력만 단절된 게 아니더라고요. 사회성도 단절, 자신감도 단절, 융통성도 단절, 상황 파악 능력도 단절... 꽤 많은 것들을 단절시켰더라고요. 

    어느 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던 희정은 얼룩덜룩한 자신의 얼굴에서 ‘희망 없는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었어요. 늘 생기 있었던 20대의 김희정은 어디로 갔는지요. 일 욕심 많고, 뭐든 배우기를 좋아했던 ‘김희정’은 어디로 갔을까요? 집안 청소를 하다 청소기를 소파 위에 던져놓고는 집 근처에 있는 서점으로 갔어요. 

서점에는 참으로 많은 책들이 있었어요. 그동안 아이들 책만 보아오던 희정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세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정작 자신이 보는 책은 아이들 동화 이 정도였으니 10년 넘는 동안 얼마나 뒤 쳐 저 살아왔는지가 실감이 되었거든요. ‘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란 책이 보였어요. 마흔이 넘은 희정에게 뭔가를 말해줄 것만 같은 책이었어요. 희정은 그 책을 잡고서 뒷면을 봤어요. 가격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18000원! 희정은 그대로 책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서점을 나왔어요. 아이들 책을 살 때에는 그토록 돈을 아끼지 않았는데, 자신이 읽을 책 한 권이 18000원이라는 건 너무 큰 사치를 저지르는 일 같았거든요.

     그렇게 희정은 자신에게 무료의 책을 주기 위해 집 근처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었어요. 읽고 싶었던 ‘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란 책은 없었지만 다른 신간 도서도 많았고, 신간 도서가 아닌 책들은 더 많았어요. 놀라운 건 희정이 읽어본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뭐야~ 뭔 책들이 이렇게도 많아? 책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초등학교 1학년의 하교 시간은 너무도 빨라요. 1시 30분만 되면 집에 오니 집에 발이 묵이는건 당연한 일이에요. 방과 후 수업을 다닌다고 해도 3시면 집에 오게 되지요. 오후에는 세 아이들 간식 챙기기, 숙제 봐주기, 큰 아이와 둘째 아이 학원 라이딩으로 꽤 바쁜 시간들을 보내게 돼요. 희정은 서둘러 책을 대출하고는 도서관을 나왔어요. 그런데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리지 뭐예요.     


    ‘떡볶이라도 한 접시 먹고 가자.’      


라는 생각으로 도서관 집 옆 백반집에 들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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