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 혹시 떡볶이 1인분도 될까요?”
“어서 와요. 왜 안돼요, 되지.”
희정은 싱긋 웃으며 구석 테이블을 자리 잡고 앉았어요. 그리고 대출한 책을 꺼내 보았어요.
“책을 좋아하는가 보구먼. 보통 아들만 책을 읽히고 어매들은 안 읽던데...”
“아니에요. 저 오늘 처음으로 제 책 대출했어요. ”
희정은 수줍은 듯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어요. 백반집 할머니는 그런 희정을 보며 웃으며 떡볶이 한 그릇을 가져다주셨어요.
“와~ 왜 이렇게 많아요? 그런데 백반집인데 떡볶이도 하시네요.”
“잉. 요 근처에 학교 있잖여. 학생들이 왔다 갔다 많이 하믄서 간식을 찾어싸킬래.”
“전라도분이신가 봐요. 저희 친정도 전라도인데...”
“그랑가? 전라도 어디라요?”
“완도요.”
“흐므~~ 멀기도 머네. 친정 어매, 아배 보고잡퍼도 못보겄구만.”
“뭐... 그렇지요. 애 낳고 사니 친정 부모님 챙기는 건 뒷전이 되었어요.”
“아는 몇이요?”
“셋이에요. 딸 하나, 아들 둘.”
“워메~~ 무자게 고생하네. 몇 살인디?”
“딸은 12살, 아들은 10살, 8살이래요. 곧 8살짜리 하교할 시간이라 서둘러 가려다가 배가 고파서 잠깐 들른 거예요. 이 동네에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인제 알았응께 자주 와.”
“네. 전라도 사투리 들으니 정겹고 힘도 나고 그러네요.”
희정은 백반집 할머니를 보며 친정 엄마가 생각이 났어요. 떡볶이맛도 친정 엄마가 해주셨던 그 맛인 것 같았어요. 떡이 퍼진 것도 아니고 탱글거리고 쫄깃하면서도 적당히 매꼼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이 10대 때 학교 앞 분식집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지요.
“손맛이 너무 좋으세요. 어쩜 이렇게 맛있어요?”
“원래 남이 해주는 것은 맛있단마시. 많이 묵어. 그래야 또 힘내서 아들 보제.”
“네. 많이 먹는 건 자신 있어요. 히히”
희정은 자신이 이렇게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면서도 마치 친정 엄마 앞에서 재잘거리는 10대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좋았어요.
“참 이쁠 나이네.”
“네? 제가요? 제 얼굴을 좀 보세요. 얼룩덜룩하니 얼룩이 덜룩이도 아니고, 기미에, 주름에... 거기다 애만 키웠더니 이렇게 진짜 아줌마가 됐어요.”
“왐마~~ 뭣이 얼룩이 덜룩이란가? 이쁘기만 하구만.”
“감사합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오래 일하셨어요?”
“한... 40년 했는갑네.”
“와~~ 진짜 오래 하셨네요. 대단하세요.”
희정은 진심으로 할머니가 대단해 보였어요. 집에서 애 보고 살림만 한 자신보다 더 할머니가 대단해 보였어요.
“뭣이가 대단하당가. 그냥 하니까 하는 것이제. 그라고 재미진게 여태껏 하고 있네. 남들은 나이 들믄 집안일도 귀찮다고 안한다고 허대. 그란디 나는 이라고 내가 요리해서 다른 사람들 먹이는 것이 참말로 재미지네.”
“천직이신가 봐요.”
“천직이랄 게 어디 있겄는가만은.... 살아본께 다들 각자 인생이 있대.”
“그래도 돈 버시니까 좋으시죠? 저는 요즘 제가 너무 한심해 보여요.”
희정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속마음을 툭 내뱉어버렸어요. 그도 그럴 것이 희정의 머릿속에는 요즘 무능해 보이는 자신, 한심해 보이는 자신만 보이고 생각하거든요.
“돈 벌믄 다 좋당가?”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은 날 것 같아요. 육아와 살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또 성취감도 없고 그래요. 그리고 그것만 신경 쓰니 제가 너무 바보가 됐어요.”
남편에게도 하지 않는 말들을 뱉어내면서 희정은 뭔가 모를 시원함이 들었어요. 자신이 말하는 말의 답이 없는 것을 아니, 다른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었던 희정이었거든요. 친정 부모님께는 미안한 마음에 할 수도 없는 이야기예요. 나름 시골에서 공부 잘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보내고, 대기업에서도 일하는 딸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부모님이었어요. 그런 딸이 육아를 위해서 일을 그만두고, 집에만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인데 그 마음을 알면서 이런 투정을 하는 것은 딸로서는 굉장히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할머니는 말없이 희정의 말을 듣고만 계셨어요.
“.... 그래서 오늘부터는 책을 좀 읽어볼까 하고요.”
“그랴, 좋네. 아 셋을 키우믄서 책도 읽어볼라고 하고... 참말로 훌륭하네.”
“얼마나 오래 할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끈기가 좀 부족해서요.”
“하이고~~ 애를 12년이나 키웠으믄 끈기가 솔찬하고만.”
“그건 낳았으니 어쩔 수가 없어서요. 그리고 그게 제 일이고요.”
희정은 떡볶이 먹는 것을 멈췄어요. 할머니는 희정에게 어묵 국물을 건네주었어요. 희정은 고맙다며 목 인사를 하고는 어묵 국물을 마셨어요. 뭔가 막혔던 무언가가 넘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게 떡볶이였는지, 희정의 속앓이였는지, 슬픔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억울한가?”
희정은 할머니의 ‘억울한가?’ 이 말을 듣고는 갑자기 가슴 한 가운데가 쓰리듯 아프고, 막힌듯 답답함을 느꼈어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희정은 눈을 감고는 천장을 보고,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울기 시작하면 펑펑 울어버릴까봐, 목이 잠겨 아파도 이 이상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싶었어요. 이미 빨간 토끼눈이 된 희정은 주섬주섬 가방과 책을 챙기며 일어났어요.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벌써 애가 끝날 시간이네요. 가야할 것 같아요. 얼마지요?”
“3000원이네. 그라고 도서관 왔다가 배고프거나, 딴 사람이 해주는 음식 먹고 싶으믄 언제든지 오소잉. 나는 그것이 행복한게. 이라고 얘기도 하고 오죽이나 좋으요.”
“네.”
지갑에서 3000원을 꺼내 주는 희정에게 할머니는 한 마디의 말을 했어요.
“그라고... 내 몸 쓰고 돈 쓰는 곳에, 내 마음이 있는 것이네.”
“몇 시까지 하세요?”
“대중 있당가? 9시에 문을 닫기도 허고, 배고프단 사람 있으믄 10시까지도 하고 그라네.”
“너무 맛있어서 애들도 먹이고 싶어서요.”
“언제든 편하게 오소.”
“네.”
할머니는 희정이 골목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게 앞에 나와서 지켜보았어요. 가을 하늘이 유난히 깨끗하고 파랗게 보였어요. 또 가을 바람은 얼마나 상쾌한 지 콧구멍을 뻥 뚫어주는 것만 같았지요.
“아이고~ 이삐다. 마지막까지 아가들 먹이고 싶다고 하고 가네.”